[광고와 춤을] 여성노인, ‘그로테스크의 미학’

[광고와 춤을] 여성노인, ‘그로테스크의 미학’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8.1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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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어떤 광고표현이 할거(割據)했을까? 21세기로의 전환기에는 20세기와 결별을 고하는 듯한 파격적인 광고표현이 많았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광고의 본성에 기인한 바 클 것이다. 도커스(Dockers)광고도 이런 경향에 편승하고 있다.

‘세상이나 거울, 운전면허증이 아니라 오직 당신이 나이를 결정할 수 있다면 멋지겠죠?’ 카피에서 제기된 질문처럼 멋진 노인여성은 세상의 편견, 타자의 시선, 나이란 단일의 요소로 규정할 수 없는 기묘한 기호로 제시된다. 노인여성은 나이듦과 젊음을 재현하는 모순되고 대립되는 기표들을 동시에 접합하고 있다. 얼굴과 머리색은 몸과 대립을 이루며, 희고 검은 머리 역시 대립을 이룬다. 구순욕구와 성욕이란 양면적인 의미를 응축하고 있는 막대사탕 역시 의미의 과잉을 드러냄으로써 의미의 부재를 확립한다. 이는 노인이 여전히 성적욕망을 지닌 존재라고 말하거나 아이 같다고 말할 때 드러나는 모순되는 문화적 사고를 동시에 전달한다.

여성노인은 ‘모든 장소에 어울리는 바지’란 제품 컨셉을 전달하기 위한 미학적 기표로 선택된다. 여성노인과 젊은이들이 공통으로 착용한 검은색 바지는 ‘상이한 장소’를 은유한다. ‘reversible’ sweater, ‘stretch’ pant란 제품의 특징을 언급하는 단어는 안과 밖의 ‘해체’, ‘가변성’을 의미하며 포스트모던 패션 미학의 주요 개념을 구성한다. 상품의 은유체로서 여성노인은 대립된 기표들을 동시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해체와 가변성을 구현한다. 도시의 양면성, 그로테스크한 도시미학의 일면을 연출한다. 그녀는 도시가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점을 입증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도시의 숨겨진 새로움을 입증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젊음의 공간이라 규정된 타자의 사유지에 무단침입을 감행하고 도시의 뒷골목이란 진부한 장소에 이국성을 부여한다.

여성노인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사고는 정지된다. 체형을 감출 수 있는 편안한 원피스를 착용하고, 몸에 좋은 자연식을 선호하며, 조용하고 자극이 적은 전원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노인은 체형을 드러내는 타이트한 팬츠를 착용하고, 과도한 당분을 함유한 막대사탕을 노골적으로 소비하면서, 번잡하고 자극적인 도시의 골목에 유동적인 존재로 기괴하게 출현한다. 사실상 소수의 혜택 받은 노인을 제외하고 많은 노인들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광고에서 이러한 사실이 성공적으로 표현되지 못할지라도 도시는 노인에게 삶의 공간이다. 골목에 배치된 신체는 그녀가 바로 이 도시의 생활자임을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몸이란 ‘장소’에 새겨진 양립 불가능한 기표들은 노인여성의 비결정성을 강조한다. 노인여성의 몸은 고정된 의미의 유보, 차연을 생산하는 그로테스크의 공간이 된다. 어떤 모순된 관계를 지닌 양면적 성격의 몸을 재현하는 것은 기이함과 낯설음을 유발하며 재미와 혐오, 유쾌함과 불쾌함이란 감정의 갈등을 생산하는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개방한다.

황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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