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광고가 페미니즘을 만날 때

[광고와 춤을] 광고가 페미니즘을 만날 때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8.11.1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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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P&G의 소녀처럼(like a girl) 광고에서는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으로서 페미니즘이 차용되고 있다. 1990년대 여성 위생용품에 부여된 의미가 ‘자유’, ‘해방’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광고에서 페미니스트 담론의 채택은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의 핵심 명제와 개념을 전술적으로 다루고 있는 P&G 광고의 인용 방식은 주목할 만한 차이를 만든다.

“여성은 되어진다”는 보봐르 (Simone de Beauvoir)의 명제는 “소녀는 되어진다”는 명제로 바뀐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어린 소녀들과 사회적 편견에 구속된 소녀들. 이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통해 사회적 편견이 작용하는 방식이 효과적으로 폭로된다. 광고가 생산하는 강렬함은 바로 문제 제기에 있다. 광고는 ‘소녀처럼’이란 규범적이고 수행적 언어가 소녀들의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제어하고 검열하는지 효율적으로 전시한다.

여자 프로듀서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소녀란 역할모델의 제시는 익숙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술을 차용한다. 프로듀서는 소녀들에게 소녀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와 소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개되는 ‘자각의 순간’과 변화의 과정은 대상에서 주체로 옮겨가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재구성한다. 바로 이 지점까지 P&G 광고는 소녀들에게 어떤 힘을 부여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P&G 광고는 페미니스트 담론을 채택한 다른 광고들처럼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숨겨진 과제를 드러낸다. “나는 소녀이므로 소녀처럼 차고, 수영하고, 걷고, 아침에 일어난다”는 확신에 찬 소녀의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이 뛰어 넘고자 하는 ‘성차 이데올로기’를 재구축한다. ‘소녀는 소녀처럼’이란 동어반복은 ‘생물학적 자기동일성’으로 안전하게 회귀한다.

한편 ‘이전’과 ‘이후’라는 시간압축방식을 통해 구성되는 ‘질문과 자각의 놀라운 마법효과’는 소녀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연대의 필요성은 침묵된다.

만약 소녀, 소녀다움이라는 용어가 그릇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광고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은 이성적이고 정서적인 울림과 자각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뒷걸음질 친다. 문제를 편견으로 규정하고 여자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모델을 찾고자 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기획도 광고 속에서 좌초된다. 진행 중인 하나의 용어로서 소녀는 광고 속에서 적절하게 재의미화되지 못한다.

“소녀처럼이 놀라운 것(amazing things)을 의미하게 만들자”는 여성의 정치적 선언은 공허한 선언의 형식만을 차용한다. 전혀 놀라울 것이 없는 ‘놀라운 것’이란 ‘수수께끼’ 같은 의미투쟁의 목표설정은 ‘전략부재’를 드러낸다.

강력한 문제제기와 김빠진 선언은 아무리 봐도 이상한 조합이다. 여성 프로듀서와 소녀들을 경계 나누는 여기와 저기란 위치 설정, 질문자와 답변자란 역할설정은 남아있는 ‘연대 가능성’을 무력화한다. 그래서 광고 속 페미니즘은 안전하다.

황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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