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미국 대선토론에서의 역대급 반전 순간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미국 대선토론에서의 역대급 반전 순간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0.05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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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미국이 제3세계 국가(the Third-world country)가 되어버렸어.”

7월 초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아 한 미국 친구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국 정치권과 그 여파를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지난 주 미국의 대선토론 이후에 그 친구가 이런 말을 보냈다. “미국은 제3세계 국가 만도 못하게 되어버렸어.” 미국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한 경험이 많은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얘기할 때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지 말라고 항상 가르치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저러면 애들에게 뭐라 하겠어요?” 미국 대선토론 자체가 승자가 누구인지를 떠나서 수준이나 보는 재미가 떨어져 가게 느껴진다. 그래서 예전에 미국 대선토론에서 빛났던 순간을 다시 찾아보았다. 모두 멋진 반전이 함께 했다.

레이건 vs. 먼데일 토론
레이건 vs. 먼데일 토론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월터 먼데일은 현역이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나이를 물고 늘어졌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기도 힘들고 사고가 생길 우려도 크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 주장이 조금씩 심지어는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도 먹혀 들어가는 분위기에서 후보 간의 TV토론이 열렸다. 질문자가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몇 날 몇 밤을 거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대처를 했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그렇게 힘든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레이건의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겠냐며 물었다.

레이건의 대답이 바로 나왔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와 겨룰 상대방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정치쟁점화하면서 거론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질문자는 물론이고 먼데일까지도 웃음을 참지 못해 다음 질문을 바로 던지지 못했다. 레이건이 스스로 마무리했다. “연장자가 젊은 친구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제대로 국가로 존속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미국 대통령 선거 TV토론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후로 레이건의 고령과 대비되어 먼데일의 강점이었던 ‘젊음’은, 먼데일의 약점이 되어 버렸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1990년 먼데일은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로 그 순간에 선거가 물 건너갔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벤슨 vs. 퀘일 토론
벤슨 vs. 퀘일 토론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댄 퀘일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경험이 없다는 자신의 약점을 만회하려 자신은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면서 하필 존 F.케네디 대통령을 물고 들어갔다. 케네디가 대통령 되었을 때보다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고 얘기한 것이다. 실제 토론에서는 ‘John' 대신 ’Jack Kennedy'라고 했다.

그의 상대였던 민주당의 로이드 벤슨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천천히 맞받아쳤다. “나는 잭 케네디와 함께 일했습니다. 잭 케네디를 아주 잘 알죠. 잭 케네디는 내 친구에요. 의원님, 당신은 절대 케네디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Senator, I served with Jack Kennedy, I knew Jack Kennedy, Jack Kennedy was a friend of mine. Senator, you’re no Jack Kennedy.).” 객석에서 박수가 터지고, 몇몇 패널들도 통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한 빛을 감추려는 표정이 역력한 댄 퀘일이 볼멘소리로 “말이 되지 않는데요(That's really uncalled for, Senator)"하고 반격을 취하려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되도 않는 비교를 시도한 게 바로 당신이야’ 식의 더욱 강력한 후속타만 허용했다.

1988년 선거에서 댄 퀘일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의 사냥감이자 놀잇감이었다. ‘댄 퀘일 때리기’가 너무 심해졌다고 느꼈는지, 몇몇 언론 매체에서는 선거의 본질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다는 반성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아버지 부시였다. 당시 공화당의 승리에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상대적으로 약체였고, 전임자인 레이건의 후광을 톡톡히 입은 점도 있었지만 희생양이 된 댄 퀘일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있어 절대적 1위였던 아버지 부시의 브랜드가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다. 그 다음 1992년의 선거 캠페인에서 TV토론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서 아버지 부시의 실수들이 두드러지면서, 보호막이자 희생양으로서 퀘일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을 받았다.

대선토론 직후에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토론의 수준이나 후보의 성적 같은 건 덮어졌다. 다음 토론의 성사 여부까지 불투명하다. 선거 자체가 제대로 치러질지, 치러진다고 해도 후유증은 어느 정도일지 걱정된다. ‘제3세계 국가’ 운운한 친구가 대선 이후에는 어떤 표현을 쓰는 상황이 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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