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뻔뻔하지만 위대한 피카소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뻔뻔하지만 위대한 피카소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2.1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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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현대 미술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있었던가. 단순히 미술 교과서에서 작품 몇 점 구색처럼 실린 것 보고 문제풀이를 위하여 화가와 작품들 이름만 외워댔다. 배운다고 제대로 감상할 것이란 보장도 없기는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 무슨 제대로 그림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겠는가. 특히 그 대표적인 인물인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 어째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지, 엄청난 가격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만난 피카소는 자신보다 수십 살이나 아래인 여성과의 염문이나 결혼, 아니면 경매에서의 연이은 최고가 경신 등으로 해외토픽에서나 나오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파블로 피카소는 뻔뻔하다고 할 정도로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예술을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쏟을 여건도 안 되어-사실 그럴 핑계가 너무 많았다-, 피카소라는 이름은 화가보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최초로 한국계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열어 한동안 인기를 끈 술집명으로 먼저 연상되었다.

말을 끄는 소년, 아비뇽의 처녀들, 배와 여자 (왼쪽부터)

뉴욕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서 누구나 그러하듯 유명한 미술관들을 의무처럼 가게 되었다. 피카소의 특별전도 아닌데 그의 작품들 몇 점이 시대순으로 전시가 되어 있는 곳이 있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 Museum of Modern Art)였다. 1881년생인 그가 20대 중후반인 1906년부터 시작하여 4년 동안 내놓은 세 개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말을 끄는 소년(Jeune garçon au cheval 1906)>은 전통적인 화풍에 가깝다. 이어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익히 아는 입체파 최초의 작품이라는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1907)>이 있고, 면들을 더 잘게 쪼개서 더욱 입체적으로 나간 <배와 여자(Femme avec Poires 1909)가 있었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아니지만, 피카소의 만년에 한 친구가 시기별로 정리된 피카소의 작품들을 보고, ‘자네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네’라는 식의 상투적인 말을 했더니, 피카소가 답했다는 반전의 표현이 떠올랐다.

“It takes a very long time to become young.” (젊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네.)

피카소가 영어로 했을 리는 없지만, 영어로 책에서 접했던 말이다. 이 정도로 반전의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가라면 충분히 그 정도 뻔뻔해도 된다. 그런 피카소가 평생을 두고 흠모한 화가가 있다. 피카소를 빼고 ‘스페인 화가’ 이름을 대라면 압도적인 1위로 뽑힐 디에고 벨라스케스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젊어졌다고, 진짜 젊음을 알게 되었다며, 곧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이 자부심 강한 천재가 고개를 숙이고 오마주 작품을 남겼다는 게 놀랍다. 바로 벨라스케스하면 가장 먼저 사람들이 떠올리는 바로 그 작품 <시녀들(Las Meninas 1656)>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과 피카소의 <시녀들>(1957)

화가로부터 시작하여 공주, 시녀, 난쟁이와 개, 국왕 부부 등 원래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위치까지 같이 하여 피카소의 오마주 작품에 등장한다. 당연히 피카소의 시간이 흐르면서 젊어진 화풍에 따라 재해석되면서 분해되고 색채가 바뀌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소재로 하여 무수한 오마주나 패러디 작품들이 나왔지만, 피카소의 이 작품을 가장 위대하다고 한다. 위에 인용한 피카소의 말과 같은 책에서 본 피카소의 다른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이런 언뜻 보면 장난친 것처럼 보이는 <시녀들>을 완성하기 위하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만 무려 46점의 <시녀들> 오마주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말을 실현했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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