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이지만 떨어지라는 이 모순의 시절을 보내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이지만 떨어지라는 이 모순의 시절을 보내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0.12.28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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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유치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깃발’을 처음 읽었을 때, 첫 행부터 이 모순어법의 반전에 바로 사로잡혔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명시들을 모아놓은 시집에 각 편마다 엮은이가 해설을 붙였는데, 이 첫 행을 두고 ‘러시아워 길을 메우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찍은 화면을 묵음(默音)으로 하여 보내면 그게 바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식으로 했다.

몇몇 단체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단어나 한자(漢字)를 선정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표현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났다. 중국에서 발생한 역병 이야기가 연초에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의 출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몇몇 한국인들이 병원균처럼 중국인을 배척했고, 서양에서는 한국인들도 같은 취급을 당하곤 했다. ‘격리’가 주변에서 숱하게 실행되면서, 용어 자체에 집단면역의 효력이 생겼다. 어린 시절 학교의 청소 당번을 맡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면 지금도 가끔씩 등에 소름이 돋는다. 막연한 이 역병의 끝까지 저항하지는 않지만 버티어보겠다는 표지 같다. ‘체념과 침묵의 표식’을 이렇게 인류가 한 모습으로 장착하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던 독재 시절에 ‘X’자를 새긴 하얀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서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강제된 ‘X’가 필요 없이 마스크 안에서 사람들은 소리 없이 아우성 치는 법을 익혔다.

미국의 ‘타임 Time’ 잡지에서는 2020년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social distancing 사회적 거리두기’를 첫째로 뽑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리며 형성하는 ‘사회’를 뜻하는 ‘social’과 사이를 떨어트리는 ‘distancing’의 이 부조리한 어울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곳곳에 표어로 붙어 있거나 나부끼고 있다. 이 낯섬은 무엇인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두고 ‘데페이즈망 dépaysement’이란 용어를 쓰곤 한다. 직역하면 ‘풍경(paysage)을 제거(de-)한다‘고 해서 ‘추방’이라는 뜻으로 쓰인단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낯설게 하기’라고 번역한다. 익숙한 풍경이나 장소에서 낯선 공간으로 가지고 와서 사물을, 사람을 배치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지며, 어느새 그 장면에 익숙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르네 마그리트는 그렇게 배치된 그의 작품들에 흐르는 데페이즈망을 두고, 사물들을 ‘소리 지르게 하기’라고 표현했다.

르네 마그리트 'Golconde'
르네 마그리트 'Golconde'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시인은 ‘깃발’의 마지막에 이렇게 영탄조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처음 매단 이를 부른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 사람들을 가두어버린 이 데페이즈망의 비현실인지 초현실인지가 헷갈리는 세상에서 처음은 궁금하지 않다. 모여서 거리를 두라는 이 세상 모순의 상징물인 흰 표지 입마개를 마지막으로 하늘로 날려버리는 그가 궁금하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향한 희망을 품고 2021년을 맞이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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