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춤을] 노인은 없다.

[광고와 춤을] 노인은 없다.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1.03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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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maid 광고는 2가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는 과연 서핑에 성공했을까? 그는 누구인가? 숨겨진 그러나 드러나 있는 답을 찾아보자.

남성노인은 오전 6시 30분 대형타월로 몸을 감은 채 차가운 바닷가에 서서 서핑을 위한 최적의 파도를 기다린다. 라싸의 사원에서 붉은색 법복을 걸치고 명상에 잠긴 티벳 승려처럼 그는 자신의 성지 호노룰루의 겨울 바다에서 체온을 지켜줄 민트색 타월로 몸을 감싼 채 파도를 기다리며 서 있다. 우측 어딘가를 향하고 있던 그는 얼굴을 돌려 고요한 눈빛과 미소로 전면을 응시한다.

광고에서 주목을 끄는 요소는 부재하는 바람이다. 좌에서 우로 부는 바람은 그가 곧 바다로 나가리라는 것, 서핑에 성공하리란 것을 암시한다. 그의 등 뒤에서 시작된 바람은 타월을 우측으로 밀어내고 ‘i dream’, ‘of the next wave’라는 문장마저 우측으로 밀어낸다. 그러나 그는 흔들림 없이 서 있다. 그리고 i (큰 소문자 아이) 는 견고하게 그의 몸 위에 중첩되어 있다.

‘나는 다음번 파도를 꿈꾼다’는 문장은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의미한다. 그는 자신을 작은 아이 그러나 큰 소문자 아이로 기술한다. 문법에 맞지 않는 주어 큰 소문자 아이는 그의 개성, 고집스러움, 솔직성 등과 같은 성격적 측면을 전달한다. 단순하게 나열된 명사, 즉 시간 (6:30am), 이름(RABBIT KAKAI), 직업(pro surfer), 공간(Honolulu, Hawaii)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의 편린들 그리고 대문자(RABBIT KAKAI)와 소문자(pro surfer)의 교차배열 등은 이 정보의 기록자가 바로 ‘그’임을 의미한다. 고유명사 래빗 카카이로서 그는 자신을 대문자(큰 존재)로 기록한다. 그러나 프로서퍼로서 그는 자신을 작은 아이로 명명한다. 그러나 그가 꿈 꿀 때(‘나는 꿈꾼다’) 그는 큰 소문자 아이이다. 이는 ‘도전정신’, ‘프로페셔널’, ‘겸손함’ 등을 의미한다. 바다의 색과 흰색포말은 그의 머리색, 수염색과 일치한다. 그는 자연의 일부이다. 그의 몸은 바다 위에 쓰인 대문자 아이 ‘I’다. 그는 바로 자연이다. 그는 소문자 아이와 대문자 아이란 모순을 보유한다.

이미지의 상단과 하단의 여백은 이 이미지가 ‘과거의 사건’, ‘인하된 한 장의 사진’임을 내포한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과 사진 속 응시는 현장에 그와 함께 있었던 누군가를 흔적처럼 보유한다. 광고의 형식구조는 자연스럽게 그와 우리를 연결시킨다. 우리는 들을 수 없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른 시간부터 서핑을 하기 위해 하와이 호노룰루에 머물던 래빗 카카이라는 프로서퍼의 익숙한 일상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 그 장소에 그와 함께 있었던 누군가가 된다.

이 광고의 매력은 노인을 늙음의 기표로 사용하고 젊은이를 젊음의 기표로 사용하려는 익숙한 유혹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광고 속에 그러한 노인은 없다. 광고가 재현하고 있듯 노인은 다만 모순을 보유한 존재 그래서 변화가능성을 지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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