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아이팟(iPod)' 브랜드 이름의 숨은 이야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아이팟(iPod)' 브랜드 이름의 숨은 이야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1.0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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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30여 년 전에 어느 기업의 신입사원 입문 교육에서 제품 개발 과정 수업을 들을 때였다. 신제품 개발 담당자가 한국에서 고유 기술로 세계 최초라고 내놓은 신제품은 탈수기밖에 없다고 했다. 수강생들이 멍한 표정을 짓자, 그가 “아, 짤순이요”라고 했다. 모두들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사가 겸연쩍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사실 짤순이도 제대로 개발한 제품이라기보다는 세탁기에서 탈수 기능만 떼어낸 것이라, 신제품 발명이라고 하기는 그렇죠.” 발명이냐 아니냐, 신기술 여부를 떠나서 ‘짤순이’라는 브랜드명은 듣기만 하면 바로 제품을 연상할 수 있게 잘 지은 이름이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 보면 성적(性的)인 올바름 측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네이밍(naming)에는 대부분 딴지를 걸 수 있는 문제들이 이름 아래 쌓여 있고, 실제 정답도 없기 마련이다.

아이맥 광고 (1999)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로 돌아와서 내놓은 첫 작품이 1998년의 아이맥(iMac)이었다. 다섯 가지 색상으로 나온 것에 더하여 내부가 훤히 비추어 ‘누드(nude) PC’라고도 불렸던 바로 그 컴퓨터이다. 애플의 원래 브랜드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의지를 디자인적으로 선보인 제품이었다. 그렇지만 크게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다.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었지만, 2001년 1월 애플은 약 2억 달러에 이르는 적자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브랜드 정신을 회복한 애플에 엄청난 금전적 수익까지 안겨준 제품은 바로 MP3플레이어에 속하는 아이팟(iPod)이었다. 아이팟 이전에 이미 MP3플레이어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정도로 많은 기업이 진출하여 경쟁하고 있었다. 최초의 MP3플레이어가 한국 기업에서 나왔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 30여 년 전의 짤순이를 한국 기술로 겸연쩍게 내놓던 시절에서 한국 전자 산업이 얼마나 그 짧은 시간에 성장했는지 발전상을 보여주었다.

아이팟의 이름 짓기를 담당한 이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였다고 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디지털 허브를 강조하면서 그 중심이 맥 컴퓨터라고 언급한 것에 착안하여,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팟(pod)은 작은 비행선을 의미하는데, 거기에 본체 우주선을 뜻하는 아이맥의 ‘i’를 붙인 것이다. 모선(母船)인 맥에 노래들이 저장되고, 모선에서 떨어져 나온 비행선이 노래 재생기가 되었다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형식이었다. 기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확실하게 담았고, ‘i’라는 애플 내에서의 일관성과 시너지도 도모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취향과 기호에도 맞춘 아이팟이 간택을 받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대부분 브랜드 이름을 결정하는 회의가 그렇듯, 아이팟이라는 강력한 후보가 있지만 수십 개의 다른 소위 들러리들도 함께 올렸다. 역시나 이름을 결정하는 여느 회의처럼 탈락할 이름들을 먼저 골랐는데,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탈락 군에 넣어버렸다. 회의를 끝내기 전에 스티브 잡스가 참가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카피라이터가 아이팟에 대해 설명하자, 스티브 잡스는 아무 확답을 주지 않고 회의장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팟이 새 이름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카피라이터는 들었다.

아이팟 광고 (2001)

아이팟이란 아주 잘 지었다는 이름을 스티브 잡스가 처음에 거부한 이유가 무엇일까? 카피라이터가 용기를 내어 아이팟을 다시 꺼내 들지 않았다면 애플의 MP3플레이어는 무어라 불렸을까. 세상에 그렇게 사라진 멋진 이름들은 얼마나 많을까. 어쨌든 아이팟이란 이름에는 죽었다가 살아난 반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에필로그와 같은 반전도 있다. 애플이 아이팟을 상표로 등록하려고 했더니, 이미 아이팟은 애플이 상표등록을 한 상태였다. 인터넷 키오스크 프로젝트를 위해 등록을 1년 전에 해놓았다고 한다. 어쨌든 ‘애플의 아이팟’이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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