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누가 "Public Relations (PR)"를 홍보(弘報)라고 불렀느냐?

[신인섭 칼럼] 누가 "Public Relations (PR)"를 홍보(弘報)라고 불렀느냐?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1.03.10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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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Public Relations"라는 말보다 줄인 말인 PR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Public Relations"라는 이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47년 5월 말 미 군정 안에 민간 공보처(Office of Civil Information)가 창설된 뒤였다. (민간 공보처라 부른 이름은 내가 지어 부른 이름이다.) 군정 시대 문서가 비밀 해지되고, 과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은 미군 정보과(G2) 문서에서 발견했다. 물론 Public Relations라는 말은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PR 또는 Public Relations, 혹은 이 영어 낱말을 “퍼블릭 릴레이션“라고 우리말로 쓴 기록은 해방 전에는 없다. 해방 이후에도 정확히 언제 어디에 이 낱말이 나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내가 겨우 찾은 것이 동아일보 1947년 4월 18일 1면 머리기사에 나온 “아시아 10개 국회(10箇國會) 6월 UN 주최(主催)로 상해(上海)서”라는 기사인데 이 기사 가운데 “UN 홍보부 차장(弘報部次長)"이란 말이 나온다. 1959년 2월 27일 동아일보 ”뒷골목“ 칼럼에는 ”파블릭리레이숀“이란 말이 나온다. 

PUBLIC RELATIONS라는 말이 있는 미 군정기관 내의 Office of Public Information 문서와 “홍보부차장(弘報部次長)“이란 말이 있는 동아일보 1947년 4월 18일 기사

궁금해서 PR, 홍보란 말에 대해 조선일보 독자 서비스 부서의 도움을 받아 해방 전후부터 검색했다. 언뜻 생각하듯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검색 결과 60년대에는 홍보라는 말보다 PR이 더 많이 사용됐고, 70년대에서 80년대 이후에는 PR이란 말이 차차 줄어들다가, 90년대에 들어서 홍보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사용됐음을 알게 됐다. (1987년 당시 여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언론 자유가 회복되고 신문 발행 면수가 엄청나게 증가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PR을 홍보라고 번역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검색에서 홍보(弘報)라는 말을 찾았다. 그리고 곁다리로 태평양전쟁이 한참이던 1940년대 중반 조선총독부 조선어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每日新報)도 뒤졌다. 그 결과 동아일보에 弘報란 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1921년 지금의 블라디보스톡 발 기사였다. “해삼위정변기(海蔘威政變起)” 즉 그 무렵 우리가 해삼위라고 부르던 블라디보스톡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는 보도인데, “홍보부 발(弘報部 發)”로 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홍보란 말이 등장했다. 그 뒤 몇 차례 홍보라는 말이 블라디보스톡 발 기사에 나왔다. 그리고 1923년 12월 17일 자 조선일보에는 일본 왕실 관련 업무에 관한 보도를 다루는 홍보부(弘報部)를 두기로 한다는 기사가 있다.

1921년 블라디보스톡 주둔 일본군에서 나온 보도 및 일본 궁내성(宮內省) 홍보담당관 신설에 관한 기사

1930년대에는 만주에서 나온 보도에 홍보란 말이 몇 차례 나왔는데, 1936년 6월 3일 자 조선일보에는 “만주 언론통제차 홍보협회를 설립(滿洲言論統制次弘報協會를 設立)”이라는 제목의 2단 크기 기사가 있었다. 1940년 8월 일본 정부의 언론 통폐합과 조선, 동아일보의 강제 폐간이 시행되었다. 그 결과 조선어 신문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만이 유일한 일간지가 되었다. 1943년 12월 25일에는 “선전의 필승 체제. 문화전사들 홍보정신대를 결성(宣傳의 必勝體制. 文化戰士들 弘報挺身隊를 結成)”이란 4단 크기 기사와 표가 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만주 언론 통제차 홍보협회를 결성이란 보도(조선일보 1936.6.3.) 및 매일신보 선전전의 필승 체제 보도(1943.12.25)

이쯤 되면 홍보란 말이 언제부터, 누가, 왜 사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되려니 했더니, 또 질문이 생겼다. 왜 블라디보스톡의 일본 군과 만주철도회사에서 홍보라는 말이 나왔으며 누가 그 창시자인가 하는 것이다.

그 실마리가 풀린 것은 10년 전 출판된(2011) “일본의 광보•PR 100년(日本의 廣報•PR100年)”이라는 책을 사서 본 뒤였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면, 홍보란 말과 그 조직을 군대 내에 시작한 사람은 블라디보스톡에 출병한 일본군 참모장 타카야나기(?)(高柳 保太郞)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를 후원한, 홍보를 이해하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총재와 부총재인 고위 외교관이 있었다.

왜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톡에 출병했는가, 어떻게 해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일본 손에 들어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홍보협회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왜 일본에서는 자기들이 만든 홍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광보(廣報)라고 하는가 등등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설명하기가 너무 길어서 생략한다.)

“일본의 광보•PR 100년“ 책 표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한국인 누가, 언제 Public Relations를 홍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답변은 “I don't know.“

다만 한 가지는 풀렸다. PR을 홍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신인섭 (전)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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