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치인의 되받아치기 유머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치인의 되받아치기 유머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19.01.16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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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CES가 열렸다. 자기 제품과 기술의 우수성을 알린다고 ‘세계 최초’, ‘세계 최대’, ‘가장 빠른’ 식의 수식어들이 난무했다. 실제로 그러리라고 믿겠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외치고 써 붙여야만 했을까. 가뜩이나 소음이 심한 곳에서 서로 같은 방식으로 소리 높여 내는 게 효과가 있을까. 강하게 부딪치는 상대를 그대로 받아주면서 되받아치는 게 효과를 발휘하기 쉽다. 상대방을 공격해야만 하는 게 일상적이라는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효과를 내는 데 익숙했던 이들의 사례를 보자.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수상을 지냈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을 만나서 얘기를 하면 누구나 10분 안에 그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보다 앞서서 1차 세계대전 때 역시 수상으로 영국을 이끈 로이드 조지(Lloyd George)란 인물이 있다. 로이드 조지를 만나면 누구나 10분 안에 자신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느끼게 된다고들 했단다. 처칠과 조지가 똑같은 성능과 품질을 가진 제품을 팔 때 어떤 방식으로 팔까? 처칠은 최고의 전문가인 자신이 추천하는 것이니까 믿고 사라는 식일 테고, 조지는 ‘당신처럼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제품을 살 것’이라는 접근을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 제품을 구입하고 싶은가? 마케팅 용어로 얘기하면 누가 고객의 편에 서 있는가?

로이드 조지는 영국식 정객(政客)의 유머를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이드 조지가 강연을 하러 웨일스 지방을 갔을 때의 에피소드이다. 웨일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정치적으로 영국에 속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잉글랜드’와 따로 소속되어 월드컵 축구에는 별도로 참가할 만큼 독립 성향이 강한 곳이다.

로이드 조지

영국 수상인 로이드 조지를 디스하려 했는지 강연의 사회자가 “우리 웨일스는 ‘길이’로 사람의 위대함을 평가하는데, 로이드 조지 씨는 듣던 것과는 다르군요”하면서 키가 작은 편인 로이드 조지에게 가시 돋친 농담을 하며 소개했다. 로이드 조지가 바로 받아서 말했단다. “웨일스가 ‘길이’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의 ‘길이’로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로이드 조지는 단신이었지만, 얼굴은 우리가 말하는 ‘말상’으로 길었다. 장내에 폭소가 터지고 그의 강연회는 열렬한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로이드 조지의 유머 스타일은 상대방을 주어로 먼저 내세우며 거기에 자신을 덧붙인다. 그리고 살짝 비튼다. 로이드 조지식 유머를 기가 막힐 정도로 썼던 아시아의 정치인이 있었다. 중국의 조우언라이(周恩來 주은래) 수상이었다.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머 두 가지가 있다.

조우언라이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십여 년이 지나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느 서방 기자가 물었다. “당신들이 그렇게 중국을 개혁하는데 성공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 창녀들이 있다는 얘기가 있어요. 맞습니까” 조우언라이 수상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질문한 기자부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조우언라이 수상이 표정도 바꾸지 않은 채 뒤를 이었다. “타이완에 아직도 있습니다.”

조우언라이가 후루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뻐기기 좋아하는 후루시쵸프가 말했다. “당신 집안은 부르주아였다면서요? 난 정통 노동자 집안 출신이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조우언라이가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우리 둘의 큰 차이점이죠.” 그리고 되받아쳤다. “그런데 출신계급을 배신했다는 공통점을 우리 둘은 또한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가시 돋친 말에 대해 조우언라이는 반박하지 않는다. 그는 수긍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고, 이어 반전(反轉)시켜 효과를 증대시킨다. 메이커들의 ‘세계 최초’와 같은 문구는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여럿이 같은 말을 할 때는 더욱 그렇게 느낀다. 그런 말에는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으니 독백에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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