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위험하다

축제가 위험하다

  • 황인선
  • 승인 2018.11.12 1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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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춘천마임축제 홈페이지
2018춘천마임축제 주제공연 중 출처 : 춘천마임축제 홈페이지

2015년 시장이 바뀌자 20년을 이어오던 과천 한마당 거리축제가 축제 감독이 경질되면서 말 축제로 바뀌었다. 과천시 예산에 한국마사회가 크게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였지만 항간에서는 당시 대통령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거리 축제는 과천이 먼저 시작한 것으로 중앙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수준 높은 해외 거리 예술을 소개하는 축제로 인기가 많았었다. 이 거리축제는 차에 점령된 거리를 잠시나마 시민에게 돌려주고 예술과 시민이 거리를 점령하게 만드는 축제 형식으로 안산, 성남, 일산, 서울 등으로 확산되던 추세였다. 과천은 중앙일보가 평가하는 문화만족도 1위도시다. 그 만족도에는 거리축제가 한 몫 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수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시는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예산 낭비(해외 공연 수입료가 비싸다는 이유)와 일부 시민들의 불만(공연이 어렵다) 등 이유를 들어 강행을 했다. 2018년 시장이 바뀌자 말 축제는 사라졌지만 거리축제는 중앙무대 공연과 과도한 푸드 트럭, 먹거리 장터로 변질됐다.

무너지는 축제들

그리고 2018년, 이번에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예술 감독이 갑자기 바뀌었다. 거리예술제 전문가인 총감독이 해임되고 탤런트출신 예술 감독이 선임된 것이다. 그는 축제 감독 경험이 없다. 올해 14회를 맞이한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경기도 유망 축제’ 3년 연속 선정, ‘지역대표공연예술제 지원 사업’에 5년 연속 선정되는 등 경기도를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로 평가받고 있으며 7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찾는 등 시민들과 국내외 예술가, 전문가그룹의 지지를 받는 축제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후 거리극축제가 전통예술이나 일반 축제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로 축제계가 성명서를 내는 등 들끓고 있다. 오랫동안 사랑받던 자라섬 재즈 페스티발도 내외 사정으로 크게 위축된 채 진행됐다. 유서 깊은 거창 연극제도 내홍을 겪으면서 위축되었고 서울 김장축제도 예산이 크게 줄어든 채 진행되었다. 축제 숫자는 엄청나게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중요 포인트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오랜 기간 축적해 놓았던 그 역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는 헤어져도 아이는 같이 키우는 것이 양식 있는 부모의 책임이다. 몇 년 임기로 끝나는 지자체장이 그 수십 년 역사를 180도 휙휙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 축제 수십 년 역사는 오랫동안 검증된 역사라는 전제에서 그렇다. 한국은 신축의 나라, 유럽은 재건축의 나라라는 말이 있는데, 과연 외국 축제는 꾸준히 이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재정과 운영을 공적 기관에만 의존하지 않는 구조 탓도 있겠지만 외국 축제들이 역사를 쌓아가는 것은 축제와 정치를 구분하고 축제 역사 그 자체를 존중해주는 문화 때문이다. 축제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는데도 한국은 정치적 의도가 축제에 개입한다. 20여년 이상 된 예술축제가 갑자기 상업화, 대중화되며 낙하산 인사가 개입하는 현상들이 그 표출이다. 축제가 뭔가 꺼리가 된다고 보기 때문인가? 아니면 축제 정도는 지자체이 획획 바꿔도 될 정도로 하찮다고 보기 때문인가?

축제 역사를 그 자체로 존중하자.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출처 셔터스톡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 출처 셔터스톡

우리에게 알려진 유명한 예술축제들은 대부분 80년대에 만들어졌다. 에딘버러, 오리악9거리극), 살롱(거리극), 미모스 페스티발(마임), 버닝맨 축제(예술),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음악) 축제들이 그렇다. 한국의 춘천국제마임축제, 거창 국제연극제 등도 80년대에 만들어졌다. 80년대는 산업화 시대가 끝나가고 문화가 있는 삶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예술로 시민들을 위로할 필요성이 컸고 시민들도 기계와 공장, 빌딩에 갇힌 삶에서 벗어날 새로운 대안적 삶이 필요했다. 지자체와 민간의 협업으로 그렇게 축제가 만들어졌고 이제 축제는 도시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관광, 일자리, 유명인, 정치적 의도 등이 개입하면 축제의 진정성은 무너진다. 축제는 무엇보다 감사와 해방, 기원(祈願)의 기능을 해야 하고 축제 운영상의 이견이 있더라도 그것은 진행 중에 시간을 가지면서 정화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축제는 위험하다. 북촌, 서촌,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 지혜를 배우자.

황인선 : 전 제일기획, KT&G 마케터. 현재 (사)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주)브랜드웨이 대표. 중소벤처기업부 소통 분과위원장. 저서 <동심경영>, <꿈꾸는 독종>,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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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귀 2018-11-14 11:13:58
인사이트가 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