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든 사람을 위한 맥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든 사람을 위한 맥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8.0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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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광고에서 여러 가지를 얘기하면 전달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제품은 결국 누구도 찾지 않게 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의 핵심으로 STP(Segmentation-Targeting-Positioning)를 꼽는다. 그런데 모든 이들을, 다수를 위한다는 특성이 매력적으로 반전을 일으키며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이라는 세계가 소비자 대상 전자 부문에 열리던 20세기 말이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공간과 매체가 디지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열리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디지털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고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소니, 파나소닉과 같은 가전 업계의 절대 강자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던 아날로그 시장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걸 지연시키고 싶어 했다. 그들로서는 소비자들이 서서히 움직여 가길 원했다.

경제 위기에 문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디지털로 경쟁의 장(場) 자체가 바뀌는 게 살아남을 유일한 기회였다. 그래서 디지털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면서, 커뮤니케이션에 관해서는 모든 걸 디지털에 올인하기로 했다. 거기에 기존 삼성이 가지고 있던 가격이 싸다는 이미지까지 긍정적으로 활용할 길을 모색했다. 그렇게 나온 슬로건이 바로 ‘Samsung DigitAll everyone’s invited’였다. 디지털에 관한 한 모든 역량을 갖췄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거기에 모든 것을 걸었고, 모든 이가 즐길 수 있게 할 테니 와서 맘껏 놀라는 의미를 담았다. 1999년의 일이다. 결과는 이후 삼성과 소니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보면 된다.

다른 품목의 최근에 나온 광고 하나를 보자. 젊은이들이 마냥 즐거워하거나, ‘너도 이제 남자구나’라고 하는 판에 박힌 부자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성별로 ‘남(him)과 여(her)‘에 불분명한 ‘그들(them)’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함을 확실히 했다. 육식을 즐기는 이,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인 척하면서 몰래 육식을 하는 사람’. 먹는 음식으로는 이 정도 구분이면 거의 모든 이들을 망라하는 것 같다. 계속 이렇게 특정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지만, 모두를 담아내는 예가 이어진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과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가 좋은 커플과 나쁜 커플’. ‘뭐 할 것도 아니면서 보기만 하는 사람, 귓구멍에 대호 소리 지르는 이, 듣는 척만 하는 사람’.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주인’. ‘가게를 지키는 이와 물건을 훔치는 이’. 그리고 별별 유형의 사람들이 이어진다.

수영장에 다이빙했으나 나올 기미가 없는 ‘수영 못하는 사람(bad swimmers)’. 주차 시킨 곳에 와서 자동차가 견인된 걸 발견한 사람. 커튼을 살짝 젖히고 엿보는 ‘호기심 많은 사람’, 거북스러울 정도로 몸을 밀착시키며 ‘친한 척하는 사람’. 웃통 벗고 바비큐를 하는 ‘뱀을 키울 것 같은 사람’, ‘명상하는 척하지만, 눈만 감고 딴생각하는 이’, ‘창턱에 온갖 것들 올려놓고 사는 이’, ‘유난히 다리에 한기를 느끼는 이’, ‘근육 자랑하려고 추운데 웃통 벗고 설치는 이’ 등등 큰 범죄를 저지르고 악명을 떨치지는 않지만 뭔가 이상한 사람들을 나열한다.

그런 모든 이들을 위한 맥주라고 주장하는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브루독(Brewdog)’의 새 광고이다. 맥주 광고는 보통 맛, 재료, 느낌, 음용 분위기 등을 얘기하기 마련인데, 브루독은 탄소배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양조에 마시는 맥주만큼 나무를 심는다는 환경 메시지를 강조한다. 그렇게 자신들이 환경에 힘을 쏟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이들을 위한 맥주이며, 지구(planet)에 가장 좋은 맥주라고 주장한다.

전체 분위기도 그랬지만 마지막에 대중적인 고급 맥주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하이네켄을 가지고 와서 반전의 묘미도 살리고 유머에 화룡점정을 했다. 꼭 브루독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며, 미지근하고 시금털털한 물을 마시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하이네켄을 마시고 병을 내려놓는 여성이 화면에 나타난다. 곧 하이네켄 병을 브루독 캔이 가린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맥주(Beer for all)’라는 태그라인이 ‘지구에 가장 좋은 맥주(planet’s favorite beer)’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뜬다. 이 정도 유머에, 명분에 반전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목표 고객으로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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