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치우(蚩尤)’를 아십니까?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치우(蚩尤)’를 아십니까?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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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20대 남성에게 ‘치우(蚩尤)’를 아냐고 물었다. 게임 이름으로 들어봤다고 했다. ‘치우 천왕’으로 다른 데서 본 기억을 물었더니,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대한민국을 붉은색으로 뒤덮었던 2002년의 기억이 당시 너무 어려서 별로 없는 친구였다. ‘붉은 악마’ 응원단이 그들의 상징으로 붉은 바탕의 엠블럼을 걸개나 깃발 등으로 들고 나와 펄럭였던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치우였다.

고우영의 "십팔사략" 중에서
고우영의 "십팔사략" 중에서

처음 붉은 악마 응원단 속의 치우 그림을 보고, 일본의 ‘오니(鬼, おに)’라고 하는 요괴나 도깨비들이 먼저 생각났다. 그랬다가 한국의 사찰에서 본 것 같은 ‘야차(夜叉)’를 떠올렸다. 거기에 가까운 것도 같았다. 그런데 중국 신화에 나오는 치우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고우영 화백의 <만화 십팔사략>에서 만난 반인반수(半人半獸)의 모습이 인상적인 만화 컷들과 함께 살아나며 피식 웃었다. 고우영 선생이나 나를 보고 불경스럽다고 경을 치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우영 선생이 처음 치우를 정의한 문장은 이랬다.

‘아주 겁나는 놈이야. 몹시 터프해.’

이어 치우와 그가 이끄는 무리들의 악행과 세력을 확장하며 주위를 절멸시키거나 복속시키는 기세를 그린 후에 ‘힘세고 포악하고, 그리고 잔인한 도술사 치우’라고 다시 정의하면서, ‘아직은 어수룩한 세월에 나타나, 월등한 세력으로 다른 종족을 휘저어 무찌르며, 자기의 생활 영토를 넓혀’ 갔던 존재로 표현했다. 그런데 구리 칼에 도술까지 갖추었던 치우의 군대가 지금의 나침반 격인 지남거와 같은 도구와 그를 가능케 한 지혜와 지도력을 상징하는 황제(黃帝)에게 패하고, 치우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 사건을 고우영 화백은 씨족 사회가 하나로 통일되면서 문명 시대가 열린 것처럼 표현했다. 

‘수상 교통을 일으키고’, ‘옷을 만들고 누에치기를 가르쳤’고, ‘십간십이지를 제정, 역법을 만들고’, ‘나무를 옆으로 잘라 둥근 테’로 수레를 만들고, ‘황하 강변에는 농사를 짓고’, ‘양자강을 개발해서 생활의 터전을 삼’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족(漢族)의 전신인 화하족(華夏族)을 이뤄, 중화민족 발상의 시조와 같은 위치에 올랐다고 묘사했고, 중국인들이 그렇게 떠받든다고 전했다. 황제의 위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영화의 악역과 같은 존재가 치우였다.

고우영의 십팔사략 중에서
 고우영의 "십팔사략" 중에서 

이후 치우는 중국 중원의 동북쪽과 서남쪽에서 그 전설이 살아났다. 일각에서 우리 한민족 국가의 원형이라는 배달국의 탁월한 임금이었으며,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국가의 설립자라고 한다. 거의 대각선의 지금 윈남(雲南) 지방으로 가면 먀오(苗)족이 자신들이 치우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고구려가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게 멸망한 후에 유민들이 중원을 가로질러 정착한 땅에서 뿌리를 감추고 살았는데, 그들이 바로 먀오족이라는 설도 등장했다.

중국 역사와 사회에서 치우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는 않았다. 용맹함에 기인한 승리의 군신(軍神), 병주(兵主)로 황제나 장군들이 전투에 나가기 전에 제를 올리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민간에서도 그를 기리는 ‘치우희(蚩尤戱)’라는 연희를 즐기고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 민속에서의 ‘처용’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겠다.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서 강한 존재로 역병을 비롯한 적들을 물리치는 데 힘을 보태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1980년대 개방 이후 중국에서 다원성도 인정하면서 한 방향의 통일성도 함께 강조해야 할 필요가 더욱 절실해졌다. 그런 일환인지 중국인의 조상 중의 하나로 치우가 불쑥 소환되었다. 원래 ‘황제의 자손(黃帝之孫)’이라고 자신들을 칭하던 중국인들이 황제에게 치우보다 먼저 굴복했던 염제(炎帝)를 , 그리고는 치우까지 넣어서 중국 문명이나 민족의 조상은 셋이라고 ‘중화삼조(中華三祖)’를 외치며, ‘중화삼조당’이라는 기념 건물까지 세웠다. 그곳에서 중화 세계의 일통을 상징하는 기념행사가 정례적으로 열린다. 관광지 이상의 소수민족의 순례지로 만들어 가려는 계획을 감추지 않는다.

역사 공정이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호 공방을 떠나서 중화삼조당 속의 치우를 고우영 선생이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단체로서의 활동은 뜸해진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열렬히 치우 문양 엠블럼 깃발을 흔들던 이들은 어떠할까. 혹시나 영혼이 있다면 당사자로서 치우가 가장 당황하지는 않을까. 실제 자신의 언행과는 상관 없이 계속 반전이 잇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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