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의 사실과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의 사실과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8.3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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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키 블라인더스 시즌1 포스터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한 친구의 추천으로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라는 BBC에서 만든 영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꼴통들의 대환장 파티’라고 친구가 묘사했는데, 그 이상의 재미와 매력이 있었다. 시즌 1의 몇 편을 보고는 가족들에게 드라마 얘기를 하니, 처가 ‘Peaky Blinders’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냥 갱단 이름이라고 했는데, 처는 그 유래를 물었다. 그때까지 제목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빠져서 봤다. 맘대로 추정하여 처의 질문에 대답했다.

“’peak’가 ‘산 꼭대기’, ‘최고’라는 뜻이고, 거기에 ‘blinder’는 ‘보이는 게 없는’, ‘완전히 눈이 돌아간 놈들’ 정도 뜻이 아닐까 싶어. ‘최고의 막가파’ 같은 식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내 말에는 큰 무게가 실리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던 아들들과 검색을 해댔다. ‘blinders’에 ‘눈을 멀게 하는 사람들’, 곧 ‘blind를 만들어버리는 이들’이란 뜻이 있다고 했다. ‘peaky’는 봉우리처럼 봉긋한 모양의 그들 갱단 멤버들이 잘 쓰고 다녔던 모자, 한때 새의 부리같이 튀어나왔다고 해서 일본어로 ‘도리구찌’라고 한 형태의 모자이다. 그 모자의 앞에 튀어나온 챙 사이에 면도날을 박음질해서 그걸 던지거나 박치기를 해서 상대의 얼굴에 낭자한 유혈이 시야를 가려버린다는 데서 그런 별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 항상 이런 드라마, 특히 범죄조직을 그린 작품에는 거짓이나 과장이 범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열성적인 시청자들이나 정의에 불타거나, 자신을 내세우려 하는 이들에 의하여 팩트 체크가 이루어진다. 사실이 아니라고 드라마를 욕할 일은 아니다. 역사 사실을 고증하려고, 반영 여부를 가지고 드라마를 평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실제와 드라마 내용과의 차이를 끄집어내고 비교하는 데서 드라마와의 밀착, ‘engagement’라는 게 높아진다고 볼 수도 있다.

몇 가지 실제와 다른 것들을 찾아보자. 먼저 시대 상황이 어그러진다. 드라마는 1차 세계대전 직후가 시대 배경인데, 이때는 이미 피키 블라인더스 갱단은 거의 사그라진 상태였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보건대 1910년경에 갱단으로서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던 단원들도 참전하면서 갱단은 소멸하였다고 본다. 이들의 상징과도 같던 면도날은 현대 마케팅 역사에서도 중요한 품목이므로 더욱 관심이 갔다.

질레트(Gillette)에서 최초의 일회용 면도날을 시장에 내놓은 게 1903년이었다. 영국에서는 1908년에 도입이 되었다. 그때는 피키 블라인더스가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던 시기였다. 면도날의 신화가 그들 이름의 원천이 될 수 없었다. 나중에 어느 소설가가 모자챙에 면도날을 넣어서 무기로 쓰는 갱단이라는 걸 창조해냈다고 한다. 2000년대 초에 방영된 후삼국 시대를 그린 한국의 TV 역사 드라마에서 어느 장수 하나가 제갈공명을 운운하며 ‘호풍환우’ 하겠다는 대사를 한다.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민간설화가 있기도 했겠지만, 그걸 자연스럽게 후백제의 중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즐길 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나중에 삼국지연의 소설의 장면을 그 훨씬 이전으로 가져다 붙인 것인데, 피키 블라인더스의 면도날 신화도 비슷한 경우이다.

사실과 어긋나긴 하지만 <피키 블라인더스>는 다른 반전을 만들어낸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의 경험이 자주 소환되는데, 결국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한다’라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 갱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 여성이 나오고, 총파업을 포함해 정치 활동에도 열정을 불사르는데, 이는 1918년 여성참정권이 인정받았던 사실을 환기시킨다. 20세기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손꼽는 윈스턴 처칠과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하는 경찰의 협잡과 음모를 일삼는 어두운 모습이 갱단의 차라리 인간적인 풍모와 대비된다.

결국 누가 반전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누가 품격을 세우고 지키고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가, 역사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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