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스포일러가 높이는 오징어 게임의 반전효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스포일러가 높이는 오징어 게임의 반전효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10.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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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넷플릭스 최고의 히트작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오징어 게임>은 공개된 직후에는 최소 나의 SNS나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부정적인 리뷰가 더 많았다. 약간 시간이 지나면서 좋고 나쁘고 평가가 반반으로 갈린다고 너그럽게 얘기하는 친구들이 나타났다. 한 친구는 마지막 회에서 두보(杜甫)의 시가 등장하는 게 그나마 놀라웠을 뿐, 모든 게 예상한 대로 진행이 되었다고 했다. 큰 반전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재미있다고 했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한 두보의 시’란 제목의 글을 블로그(https://blog.naver.com/jaehangpark/222512964815)에 올렸는데, 평균 조회 수의 10배 이상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글은 전편 정주행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썼었다. 두보의 시를 VIP 중의 하나가 읊는, 최후까지 남은 두 명이 오징어게임을 벌이는 그 장면만을 찾아서 봤을 뿐이었다. 글을 읽은 친구들이 작가(?)로서 양심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놀려대며,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작품이 매우 재미있으니 꼭 보라고 했다. 그 즈음하여 오징어 게임 작품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하게 화제가 된다고 했고, 세계 곳곳에서의 패러디 등 반응이 미디어를 휩쓸기 시작했다. 정주행 시청을 시작했다.

VIP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를 읊는 장면

작품의 줄거리, 반응, 감독과 배우 등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 등 나름 자료를 통하여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시청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말처럼 반전은 없어야 할 상황이었으나, 알면서도 계속 반전의 연속이었다. 이런 반전을 먼저 일러주는 것을 ‘스포일러(spoiler)’라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일상용어처럼 스포일러라는 단어를 쓴다. 영화평이나 소개 기사를 보면 ‘스포일러 주의’ 혹은 ‘스포일러 있음’이라는 주의가 마치 정해진 규칙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할 정도로 붙어 있다. 어벤져스(Avengers) 영화가 새로 나올 때마다 어떤 경우에도 헤드셋을 하고 다니고, 사람 많이 모인 곳은 아예 가지 말라는 등 스포일러를 피하는 방법을 알리는 글이 먼저 돈다. 영화의 사전 프로모션의 일환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스포일러의 원뜻은 흔히 쓰는 것과는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머리 쪽에서 오는 바람에 맞서듯 날개 위에 눕혀져 있던 넓적한 철판이 일어선 걸 볼 수 있다. 착륙하거나 선회할 때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여 속도를 줄이는 기능을 한다. 자동차 트렁크나 뒷부분에 보면 날개처럼 생긴 부착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장식처럼 여겨지나 기능적으로는 자동차가 고속으로 주행할 때 뒷부분이 들리지 않게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공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이런 걸 ‘스포일러’라고 한다. 정치판에서 스포일러라고 하면 자신이 당선될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유력 후보를 낙선시킬 정도의 득표력은 있는 후보를 일컫는다. 모두 무언가를 막고 어그러뜨리는 것이니 영화, 드라마, 소설의 결정적인 장면을 알려주어 흥미를 반감시켜버리는 것을 스포일러라고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추리소설을 읽고,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평가를 하면서 간단한 독후감을 써오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는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지 전형적인 스포일러로 주요한 내용을 미리 알려주었다. 다른 그룹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소설을 주고 읽어 오라고 했다. 스포일러를 받은 학생 그룹이 재미 부분에 준 점수가 훨씬 높았고, 독후감도 더욱 충실하게 썼다고 한다. 때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지만, 스포일러가 콘텐츠를 보는 재미를 망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란 반증이다.

자발적으로 스포일러를 잔뜩 흡수하고 시작했던 나의 오징어 게임 시청도 오히려 그로 인하여 더욱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게임의 최초 설계자이면서 직접 게임에 참가한 뇌종양을 앓는 노인은, 그 사실이 알려지는 과정까지는 알지 못하여 끝까지 그 순간을 기다리며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어떤 반전에는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가 필요하다. 그 자체가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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