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전쟁과 광고 - 포스터 모델 찾는 데 걸린 세월 6년

2020-02-19     신인섭 대기자

전쟁은 영웅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유명한 광고를 낳기도 한다.

세계2차대전 때 미국에서 유명해진 광고가 하나 있다. 이 광고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 리벳공 로지 (Rosie, the Riveter).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가고 그들이 사용할 무기와 물자는 생산해야 하고.

원래 서부 개척시대 영화에서 보듯, 때로는 미국 여성이 총 들고 쳐들어오는 인디언과 싸우기는 해도 원칙은 역시 집에서 애 키우고 가사 돌보는 현모양처였다. 그러나 전쟁은 여성을 군수 공장으로 몰아갔다. “리벳공 로지”는 그래서 태어났다.

미국 공익광고협회가 협조한 이 포스터는 2차대전 동안 유명한 작품이 되어 애국 정신의 발로처럼 되었고 1960년대에는 미국 여권운동의 힘이 되었다. 그런데 이 포스터의 시작은 웨스팅하우스사의 전쟁물자 생산 조정위원회가 전쟁 승리를 위해 J. 하워드 밀러라는 아티스트를 채용해서 만든 포스터 가운데 하나였다.

1942년에 이 포스터를 제작할 때에는 “We can do it!"이던 이 광고는 뒤에 ”Rosie the Riveter"가 되었다. 이 포스터가 유명해진 데에는 다른 사건이 있었는데,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라크웰 (Norman Rockwell)이 유명한 Saturday Evening Post 표지 사진에 이 포스터를 사용한 것이다. 1943년이었다. (이 그림은 2002년에 소더비(Sotheby‘s)경매에서 500만 달러에 팔렸다.)

그런데 2차대전 기간 중 전쟁물자 생산 노동자로 일한 여성 포스터 주인공이 실존 인물인가, 그렇다면 그 여성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제임스 J. 킴블(James J. Kimble) 박사는 6년 동안 추적 끝에 드디어 캘리포니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나오미 파커 프렐리 (Naomi Parker Fraley) 부인을 찾았다. 그리고 2018년 1월 22일자 뉴욕 타임즈는 96세에 타계한 Mrs. Fraley, Rosie the Riverter의 사망 소식을 보도했다. 2 페이지가 넘는 기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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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팝문화의 나라, 여성 평등의 나라, 광고의 나라, 그리고 봉준호가 세계 무대에 오를 터전이 된 나라 미국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가 독일 세창양행의 광고임을 찾은 것은 광고 학자가 아니었고 서강대학 신문방송학과 유재천교수였다. 그런데 그 때까지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는 막연히 독립신문에 게재된 광고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유교수가 한성주보 1886년 2월 22일, 제4호에 실은 세창양행 광고가 한국 최초의 신문 광고라는 사실을 밝힌 것은 1975년 중알일보 창간 10주년 행사 기간이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광고가 밝혀지는데 89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그 광고를 쓴 사람이 누구이며, 광고료는 얼마였고, 또한 어떤 경로로 광고가 게재되었는가 따위를 파고 드는 광고학자는 아무도 없다. 금년 창설 30년이 된 한국광고학회 신임 회장 투표에 등록된 회원수는 371명이다. 3월 5일에는 조선일보, 4월 1일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2018년 한국 광고비는 11.7조원, 100억 달러를 넘고 광고비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있는 한국의 광고 역사 연구는 아쉽게도 이 정도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