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624년 만에 밝혀진 인류의 비밀 - 직지(直指) 그리고 BTS

2021-09-29     신인섭 대기자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10월 19일에 중북 청주시 흥덕사가 있는 <고인쇄(古印刷) 박물관>에서는 전시회가 열린다. 흥덕사는 지금으로부터 644년 전인 1377년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직지(直指)>가 인쇄된 곳이다.

청주 고인쇄 박물관, 그리고 <직지>란 금속 활자 책은 우리에게 그리 낯익은 이름이 아니다. 흔히 금속활자 인쇄의 시작은 독일 구텐베르크가 1455년 금속활자로 인쇄한 42자 성경이라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하기야 나무랄 것도 없을지 모른다. 유네스코(UNESCO)에서 공식으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고 발표한 것이 2001년 즉 겨우 20년 전이었으니까.

역사적인 사실(史實)은 고려 말 1377년에 고승 백운화상(白雲和尙)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전에 출판했다. 이 역사적인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01년이었다. 그 해에 유네스코는 직지를 세계기록 유산(Memory of The World Register)으로 등재했다. 말하자면 <직지> 책 출판 624년 후에 이런 사실을 세계가 공인한 것이다. 잘못은 이런 사실을 600여 년 동안 모르고 있던 우리에게 있었다. 매우 다행한 것은 이런 사실을 밝혀낸 분이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란 말이 나온다.

<직지(直指)>란? 흔히는 줄인 말 <직지>라 부르지만 제대로 쓰면 <백운화상 초록 불조 직지 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 된다.

간단히 풀이자면 쓰신 분의 이름은 <백운(白雲)>이니 흰 구름이요, 오랜 동안 도를 닦은 스님이므로 백운화상(白雲和尙)>이라 부른다. 초록이란 필요한 대목만을 간추린 글이라 뜻이며, <불조직지심체>는 불도를 깊이 닦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라는 뜻이라 한다. 인도와 중국의 승려 145명의 글 가운데 골라서 모은 책이므로 초록이라 했는데 독실한 비구니 묘적이란 분의 도움으로 출판한 책이다.

이 소중한 책은 상하권 두 권으로 인쇄되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하권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이유는 19세기 말 한국이 개항한 뒤 프랑스 대사관의 공사로 있던 콜린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가 귀국할 때에 가지고 간 수집품 가운데 들어 있던 <직지>는 그 뒤 고서적 판매상의 손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624년 만에 유네스코의 공식 발표로 <직지>가 제자리를 찾기까지에는 한평생을 우리 것 찾기에 바친 재외 한국 여성학자 박병선 박사의 눈물겹고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박병선은 1955년 서울대학 사범대학을 나와 프랑스로 유학길을 떠났다. 박병선은 대학 은사 이병도(李丙燾) 교수의 부탁을 잊지 않고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外奎章閣儀軌)의 행방을 찾아 보라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도서관을 드나드는 박병선을 눈여겨보던 도서관 측은 1967년 그를 사서로 채용했는데 박병선이 의궤 찾기 5년 만에 발견한 것은 의궤가 아니라 <직지심체요절>이었다. 직지심체요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2년 프랑스 도서관이 주최한 "이 해의 국제 도서전"이었고, 비로서 수년에 걸친 박병선의 노력이 빛을 보았다. 3년 뒤 베르사유 궁전 분관 창고의 고서 뭉치에서 의궤(儀軌)를 찾은 뒤 한국으로 <영구 대여>된 것은 또 다른 30년이 흐른 2011년이었다.

고인쇄박물관

직지 고인쇄 박물관 이름을 바꾼다고? 금년 봄, 30년 지켜 온 이 박물관의 이름을 바꾼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10월 중순에 우리 광고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세계가 온통 디지털 시대인데 <고인쇄>란 이름이 고리타분해서 그럴까 했다. 그러다가 금속 글자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와 관계 특히 광고와 어떤 관계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로제타

모두 아는 대로 광고의 시작은 글이었다. 세계 광고의 효시라는 이집트의 <로제타의 돌>(지금은 대영박물관에 전지)도 상형문자, 민용 문자 그리고 그리스어의 3개 글이다. 중국이 국보처럼 자랑하는 북송시대(960-1127)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그림이지만 그 이름 속에 수두룩한 간판에는 모두 글자가 있다. 일본의 오랜 광고는 히끼후다(引札) 혹은 노렌(暖簾)인데 역시 글자와 그림이다.

지금은 소리, 그림, 동영상이 더욱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나 글이 없는 광고란 거의 없다. 그러고 보면 광고는 글을 가장 자주 널리 많이 전파하고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책이지 광고 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에 쓰인 글의 목적이 부처님 말씀을 널리 꾸준히 알리고자 하는 것, 즉 광(廣)하게 고(告)하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교이든 정치이든 문화이든 무슨 일이든지 알리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디지털 스마트폰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 신문이 매년 4월 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한 것은 1896년 4월 7일에 서재필 박사가 한글로 독립신문을 창간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 창간호 1면 첫 글의 제목은 <광고>이다.

독립신문

지난 수년 사이에 한국은 <강남 스타일>, <기생충>, <미나리> 그리고 9월 유엔 총회에서 다시 이름을 날린 BTS를 낳았다. 4년 전 한글 박물관은 거의 반년 동안 <광고의 힘>이란 전시회를 했다. 아무도 눈 돌리지 않던 광고에 나타난 한글의 변천을 처음으로 발굴한 것이었다. 광고 언어뿐이 아니라 글자체도 조사했다.

백운화상의 <직지>가 미친 영향을 구텐베르크의 42행 성경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다만 <고인쇄박물관>이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그것은 130여 년 동안 이국땅 고문서 뭉치 속에서 폐기될 뻔한 세계 문화유산 <직지>를 찾아낸 한국 민족의 슬기의 부활이라고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BTS의 다음 노래 제목은 <Jikji> 면 어떨까?

 ※ 박병선 박사는 1970년대 중앙정보부가 구미 유힉생을 귀국시킨 후 거치게 다루는 것을 알고 귀국을 거부함. 박병선에 관한 자료는 많이 있음. 10여년 간 <직지>를 연구한 결과,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프랑스에서 출판하지 못하고 후에 한국 정부지원으로 한국에서 출판함.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방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