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중국이 서구에 뒤졌다고 하는 건 기껏해야 150년, 길게 잡아도 200년이 안 됩니다.”
대학에서 수강한 중국사 입문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였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기 전이었다. 중국공산당을 줄여 중공(中共)이라고 불렀고,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라는 노래를 초등학교 때 배웠던 세대였다. 우리에게 합법적(?)인 중국이란 당시 자유중국이라고 보통 불렀던 타이완(臺灣)이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양문명에 대한 경배와 동양적인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콤플렉스에 젖어 있던 우리에게 중국 역사를 하는 자부심을 불어주며 격려하는 의도가 크셨을 거다. 그래도 중국을 비롯한 동양이 서양에게 넓은 의미로 지배를 당했다는 역사적 진실은 담고 있다. 동서양의 힘의 균형이 달라지는 단초를 만든 인물들의 앞줄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문제적 인물이 있다.
‘pre-pc(politically correct)’, 곧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용어 자체가 없었던 시기에 콜럼버스는 위대한 탐험가의 목록에서 가장 앞자리에 있었다. 콜럼버스가 태어난 고국인 이탈리아, 그의 최초 대서양 횡단을 후원했던 스페인은 물론이고, 스페인과 초기 해양 국가의 패권을 다투었던 포르투갈, 그 뒤를 이은 네덜란드와 영국도 콜럼버스를 자신들의 선구자로 추켜올리고 기렸다. 미국은 자기 국가를 가능하게 만든 길을 열었다면서 콜럼버스를 경배하다 보니, 미국에서 도시의 이름으로 가장 많은 게 콜럼버스라고도 하고, ‘콜럼버스 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서구 편향이 심했던 한국에서까지 콜럼버스는 위인의 반열에 올라와 있었다. 탐험가는 물론이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사실인지 전설인지 구분이 힘든 일화까지 잘 알려져 있다.
제국주의(帝國主義)란 말을 일상에서까지 쓰고,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란 표현이 등장하며 콜럼버스의 신화는 세계 곳곳에서 균열이 생겼다. 거기에 콜럼버스보다 100년 가까이 앞선 중국의 명나라 초기 영락제 시대에 정화(鄭和) 함대가 세계 대양을 주름잡으며 인도를 거쳐서 아프리카, 심지어는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하여 거점을 건설했다는 영웅담이 퍼져 나갔다. 활동 시기, 항해 영역 등에서 정화와 콜럼버스가 비교되었다. 무엇보다 콜럼버스를 초라하게 보이게 한 건 함대의 규모와 주요 선박들의 크기였다.
콜럼버스의 기함(旗艦)이라고 하는 산타마리아호와 정화 선단 주력함의 크기를 비교하는 그림은 여러 형태로 알려졌다. 중국 난징의 명대 조선소 유적지라고 하는 곳에 실물 크기로 2006년에 복원했다는 정화 함대의 배가 전시되어 있다. 산타마리아호 대비 길이는 3배 이상, 톤수로 따지면 10배 이상으로 정화의 배가 크다. 중국사를 전공한 선후배들과 2019년에 난징의 조선소 유적에 간 적이 있다. 누구 먼저 꺼냈는지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정화의 배와 비교하니 일엽편주와 같은 콜럼버스의 배들과 초라한 행색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콜럼버스 선단과 함선의 규모는 처음 콜럼버스가 첫 항해에 나설 때부터 많은 이들의 우려를 넘어서 한편에서는 비웃음을 살 정도로 형편없었다. 대서양을 건너기에는 부적합한 콜럼버스 선단의 배들을 웃음거리로 삼은 광고들이 있다. 어떨 때는 너무 B급이다 싶은 유머로 유명한 가이코(Geico) 자동차보험의 2012년 광고에서 여왕을 알현할 때와 같은 귀족 복장으로 한껏 멋을 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모터보트를 타고 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를 가르는 모터보트 세 대의 중간에서 콜럼버스는 망원경을 보며 섬을 발견했다고 외친다. 거기서 갑자기 무인도에서 기타를 치며 한가롭게 노는 두 남자가 나타난다. 가이코의 할인 혜택을 받았으면 콜럼버스가 모터보트를 탄 이상으로 기뻐했을 거라고 말한다. 콜럼버스 선박들의 작은 크기와 느린 속도를 함께 조롱 대상으로 올렸다.
잭 웰치의 장기 철권통치에서 벗어나서, 그와는 궤를 달리한 후계자인 짐 이멜트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창립자와 그 정신을 강조하는 ‘Imagination at Work’ 캠페인을 하던 2004년에 GE 파이낸스에서 콜럼버스를 불러낸 적이 있다. 귀족풍 의상을 갖춰 입은 콜럼버스가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펼치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엄청난 부(富)를 가져다 바치겠다고 한다. 의심의 눈길로 그를 보던 여왕의 신하가 콜럼버스에게 배가 있느냐고 묻는다. 예상하는 질문이었다는 듯, 콜럼버스는 당당하게 질문을 한 신하를 포함하여 여왕의 일행을 끌고 해안으로 간다. 이 대목에서 반전을 암시하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제대로 파이낸싱이 안 되면 성사되지 못합니다.”
그런 반전 기미와는 무관하게 자신감에 넘친 콜럼버스가 노꾼들이 젓는 배를 타고 외친다.
“자, 이제 나의 기함으로 가자!”
노 젓는 이 하나가 심드렁하게 답한다.
“이게 바로 기함이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노 젓는 배 세척이 나오고, 누군가 묻고 짜증 섞인 대답이 나온다.
“언제 도착해요?”
“잔말 말고 노나 저어.”
흔적을 거의 없애 버려 정말 상상으로 많이 채워지는 정화 함대의 항해 장면이 더욱 궁금해진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