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웃겨야 한다는 강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웃겨야 한다는 강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2.15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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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코미디나 개그 아이디어 회의가 진행되는 모양을 보면, 한 사람이 단초가 될 재미있는 재료들을 가장 많이 붙인 게 아니라 주제에 맞추어 연관이 없는 가지들을 가장 많이 털어낸 것이 나중에 진정한 명작이 된다고 한다. 유명인사가 연관된 특정한 사건이나 발언을 두고 풍자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풍자는 사라지고 말장난만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웃겨야 한다’라는 강박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이다.

광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곧잘 벌어진다. 광고계의 오래된 격언으로 ‘여러 가지를 말하면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은 것이다’와 같은 말이 있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로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메시지를 얹거나 결재 단계에서 한 문장씩 덧붙여져서 간결한 한 줄 카피로 만들어졌던 시안이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수다스러운 광고로 변하는 경우도 꽤 많이 봤다. 특히 유머 광고에서 사람들이 웃지 않을까 봐 우려해서인지 연이어 웃음 유발 장치들을 들이대곤 한다. 올해 슈퍼볼 GM 광고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윌 페렐(Will Ferrell)은 TV와 영화를 종횡무진으로 달린 21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코미디 배우 중 하나이다. 슈퍼 코미디언들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NBC TV의 대표 프로그램인 SNL(Saturday Night Live) 출신으로 영화에서는 앵커맨으로 분한 시리즈나 피겨스케이터로 나온 <Blades of Glory> 등이 유명하다. 그가 화면에 나타나기만 해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애를 쓰고, 그런 만큼 그가 불쑥 던지는 말이나 펼치는 행동에 막고 있었던 웃음보를 확 터뜨린다.

“노르웨이가 인구 대비 전기차가 가장 많다는 사실 알았나요?” 윌 페렐이 질문을 던지다가 노르웨이 위치를 지적하려던 지구본을 주먹으로 쳤는데, 아무리 원반 돌리기처럼 애를 써도 손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몰고 ‘그들을 쳐부수자, 미국이여!”라고 소리치며 차를 몰고 간다. 그가 찾아간 곳은 SNL의 유명 출연자인 코미디언 케난 톰슨(Kenan Thompson)의 집이다. 딸의 생일이라고 어깨에 앵무새를 얹은 로빈후드에 나오는 산적이나 스머프처럼 분장한 톰슨은 노르웨이를 무찌르러 가자는 페렐의 대의에 함께 길을 나서기로 한다. 이후 바로 그는 중국과 한국계 부모를 둔 아시아계 코미디언인 어커워피나(Awkwafina)에게 간다. 활쏘기 연습을 하는 어커워피나의 화살을 손에 박힌 지구본과 입으로 받아내고는, 그녀 역시 동참하도록 이끈다. 대서양을 건너는 화물선 컨테이너에 운전대에 앉은 채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험한 파도에 멀미를 겪기도 하며 결국 도착하여, 메가폰 마이크를 들고 자동차 문을 박차고 나오며 외친다. “노르웨이, 잘 들어!”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사가 나온다. 그때 케난 톰슨과 어커워피나에게 전화가 온다. 핀란드에 떨어졌다는 그들에게 ”난 노르웨이에 있다고“라고 외치는데, 행인이 우으며 ”여기는 스웨덴이에요“라고 일러준다. 윌 페렐의 코미디에서 잘 나오는 ”젠장! “외침이 끝나기 전에 ’GM이 노르웨이에 옵니다. 2025년까지 전기차 모델 30개 도입 예정(We’re coming Norway. 30 New EVs by 2025)라는 카피로 마무리한다.

90초 동안의 러닝타임에서 장면마다 웃음을 끌어내려는 대사와 행동들을 집어넣으려 애썼다. 마지막에 동료들은 핀란드에, 자신은 스웨덴에 도착한다는 반전까지 촘촘했다. 그 기제의 남용에 지치기까지 하는데, 그걸 노르웨이 사람들이 메꾸어주었다. 슈퍼볼 사전 광고로 공개되자마자 노르웨이에서 패러디나 대응 영상물이 쏟아져 나왔다. 광고를 론칭하고 성공 여부를 가리는 가장 빠른 길은 얼마나 많은 패러디 영상물이나 밈이 나왔는지 보라던 시절이 있었다. 그 기준으로 치면 성공한 광고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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