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역지사지가 필요한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역지사지가 필요한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2.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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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Action Institute

“상대편의 테러리스트는 우리 편의 자유의 투사다(When our guy kills in battle, he’s a freedom fighter; when our enemy does, he is a terrorist.)”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신학자인 존 볼트(John Bolt)가 911 사태 직후인 2001년 11월에 쓴 이다. 이 문장만 어느 책에 인용된 걸 보았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상황이나 인물을 두고 다르게 평가할 수 있으니,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런데 존 볼트가 쓴 전체 글을 보면 정반대의 의도로 쓴 것이었다. 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 건물에 여객기를 충돌시킨 이들을 두고 인식관을 달리 하면 그들도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 세계질서에 항거하는 ‘자유의 투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 발끈(?)해서 쓴 글 중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테러라고 규정할 수 있는 행동은 그 동기를 7대 죄악 중의 탐욕과 질투의 존재 여부에 두고 있다고 보았다. 

세계의 국가나 부족 간의 갈등과 분쟁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한국인 종군기자의 경험이 생각난다. 미국이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생산해서 감추고 있다며 공습하려 하고, 아랍권이 강력하게 반발하던 시점이었다. 미국에 의하여 테러리스트라고 지목된 단체의 리더를 만났다. 종군기자의 국적인 한국이라는 걸 알게 된 그가 이렇게 얘기했다.

“당신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 부른다면 나를 그렇게 불러도 좋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도 있었다. 아랍권 최고의 상인으로 이름이 높아서 유대인들까지도 찜 쪄 먹는다는 레바논의 철저하게 자본주의로 무장한 것 같은 바이어 하나도 친구가 무심코 내뱉은 ‘테러’라는 단어에 격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테러(terror)가 아니고 저항(resist)라고 해야 돼요.”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정치권과 그쪽 소식을 다루는 언론 기사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세 가지 말이 있다. 식상할 정도로 많이 쓰이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내로남불’이 첫 번째이다. 뭔가 잘못되거나 했을 때 내뱉는 ‘거봐’가 뒤를 잇는다. 뻔히 안 될 걸 자신은 알고 있었다는 의미를 깔고, ‘쌤통이다‘ 식으로 비아냥거리며 말할 때 쓰인다. 마지막으로 ’달라진 것 없네‘가 있다. '거봐' 뒤에 결국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것 없다고 확실하게 결론짓는 식이다. 바꾸어보자는 이들의 딴지를 거는 것에서 나아가 짓이기고 확인사살까지 하는데, 기본 입장은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런 자세에서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전이 일어난다고 해도 긍정적인 효과란 없다. 광고라면 소비자의 자리에 서봐야 하고, 정치인이라면 상대방의 시각을 살펴봐야 한다. 그저 자기의 형편만 고집하다가는 뭔가 큰길로 치닫는 것 같은데, 결국 막다른 골목에 갇히는 반전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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