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보약이 오래되니 독약이 된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보약이 오래되니 독약이 된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3.01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정치권에 한 발을 걸쳐 있던 선배가 그쪽에서 제법 이름 있는 광고계 출신 인사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광고 쪽에 몸담았던 여러 명에게 단체 메시지 형식으로 동시에 물었는데 별로 딱 부러지게 대답하는 이가 없었단다. 그들이 대상 인물에 대해서 잘 몰라서 조용히 있었을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해서 평가하기 뭐하니 대답을 아꼈을 수도 있다. 나도 후자 쪽이라 가만있다가 약간 음주를 하고, 술기운이 돈 후에 별생각 없이 휙 답을 보냈다.

"지금 세상에 눈앞의 승리를 위해서는 득이 되지만, 오래 두면 독이 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그리 매몰차게 한 양반을 한 문장으로 평가했는지 술기운만으로 돌리기에는 부끄러웠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가당치 않았다. '지금 세상'이라고 한 것이 차후에 어떻게 되건 간에 어쨌든 바로 눈앞의 이익을 취하려 하고 그렇게 하는 게 능력 있는 인간의 표상으로 받들어지는 세상임을 지적하며, 살짝 방어막을 치고 싶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박정희 전(前) 대통령에게 ‘김재규는 순간 반짝거리며 효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두고 있으면 좋은 보약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김재규를 추천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사람이 한 생애를 통하여 득이 되고 독이 되는 일들을 번갈아 가면서 한다. 혹은 사람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독이 되고 누구에게는 득이 되는 삶을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같은 사람에게도 보약으로 지어둔 게 오래되면 곰팡이도 피고 악성 세균도 들어가서 독약이 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인생의 굴곡이요, 반전 아닌가.

말을 해놓고 한참 있다가 내가 한 말 자체가 삼국지의 한 대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治世之能臣, 亂世之姦雄)'이란 조조에 대한 평가가 떠올랐다. 그래서 비슷하게 사자(四字)로 비슷한 뜻의 성어(成語)를 만들어 보았다.

短得長毒 (단기간에는 득이지만, 장기간으로는 독이라).

비슷하게 다른 말들도 생각했다.

一得十毒 ('바로 앞 하나로는 득이지만 열을 보면 독이 된다.' 혹은 '득이 하나면 독이 열이다.')

잘 모르고 벌이는 한자 놀음은 재미있다. 한자성어에는 이런 반전을 담은 것들이 많다.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보면 ‘달다’와 ‘쓰다’, ‘다하다’와 ‘새로 오다’를 대비시키고 있지 않은가. 봄이 왔다고 마음을 들뜨게 하고는, 봄 같지 않으니까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은 한국에서 1980년을 상기하면 꼭 나오기 마련이다. 폭력적 반전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로 이제 자주 쓰인다.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진정한 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작은 꼬투리 잡아서 단기 이득을 보려 하지 말고, 더욱더 많은 이들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언행들이 꽃피는 봄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