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프로파간다 (Propaganda), 선전(宣傳), 광고(廣告)

[신인섭 칼럼] 프로파간다 (Propaganda), 선전(宣傳), 광고(廣告)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1.04.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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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 기간 영국에서 제작한 모병 포스터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 "프로파간다"를 지금 선전이라 한다. 그 어원은 라틴어에서 비롯되는데, 로마 교황 그레고리 15세가 1622년에 제정한 "Congregato de Propaganda Fide"(Congregation for the Propaganda of Faith)에 나오는 말이다. 이 기구는, 쉽게 풀이하면, 신앙보급위원회라 할 수 있다. 이 위원회를 만든 이유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시작된 개신교의 확장과 그 비판에 대항해서 카톨릭 포교를 확산하려는 데에 있었다. 당시 독일에는 15세기 중반에 구텐베르그가 발명한 인쇄술로 대량 인쇄라는 뉴미디어가 있었으므로 위원회의 활동을 위한 간행물을 제작, 배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프로파간다(이하 선전)가 활발해진 것은 20세기에 들어선 뒤였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선전을 이용한 효시는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책자였다. 물론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책자였다. 정부가 대량으로 선전을 이용하게 된 것은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이었다.

1917년 미국의 1차 대전 참가로 대대적인 선전활동이 필요했다. 이 때 윌슨 대통령 지시로 창설된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 (공보위원회)가 대대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홍보라기보다 선전에 가까웠다. 물론 미국 뿐 아니라 참전국인 영국도 선전전에 나섰다. 이 1차 대전 때 유명한 포스터가 영국과 미국에서 나왔는데 영, 미 광고사에 걸작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적국인 독일도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했다. 1930년대 초 히틀러가 집권한 뒤에는 유명한 선전상 괴펠스가 이름을 날렸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 미국에서 만든 모병 포스터
1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에서 만든 모병 포스터

일본은 어떻게 했나? 일본이 선전전에 뛰어 든 것은 서양보다 좀 늦었다. 우선 1930년대 초 국책 관민 주식회사인 만주철도는 일본이 세운 만주괴뢰정부 정책 지원과 만주 민심 회유용으로 방대한 선전조직을 만들었는데, 홍보협회란 호칭을 사용했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뒤에는 내각 정보위원회가 확장되어 모든 매체를 총괄해서 대대적인 국가 선전전을 전개했다.

일본에서 선전이란 말이 등장하는 것은 1920년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지금도 선전이란 말이 광고와 혼용되고 있다. 그것은 유력한 광고 전문지의 이름이 “선전회의(宣傳會議)”인 것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해방 전 일본 통치 시대에는 광고와 선전이란 말이 혼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섞어 쓰다가 그 이후에 홍보란 말이 자리를 잡으면서 선전과 광고는 분명히 갈라지게 되었다. 그 한 가지 사례가 1978년 4월에 창설된 현재의 HS애드의 전신인 희성산업(喜星産業)의 명칭에 나타나는데 “럭키그룹홍보선전실(弘報宣傳室)”이란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명칭의 선전이란 광고를 말한다. 88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된 PR시대 돌입 후 선전은 빛을 잃게 되었다 - 3.8선 이북을 제외하고는.

이제 선전이란 말은 사전의 풀이와는 달리 광고도 아니고 공보나 홍보(PR)와도 달라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부정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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