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과거를 되살리는 빙의 연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과거를 되살리는 빙의 연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1.04.1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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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2공화국" 중에서
드라마 "제2공화국" 중에서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 대학로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4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봄의 기운을 느끼고자 낙산공원에 올랐다. 방송통신대 건물을 끼고 대학로에서 낙산 쪽으로 가며 첫 번째 계단을 오르니 이화장이 있었다. 자연보다 정치의 4월이 숨을 턱 막히게 하면서 다가왔다. 4·19 후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미국의 하와이로 망명을 하기 전까지 리승만이 머물던 곳이 이화장이다. 이후 리승만의 사후에 한국으로 온 부인인 프란체스카의 거주지가 된 건물이다. 리승만이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에서 나와 이화장으로 와서, 담장을 사이에 두고 길에 있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던 사진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시민혁명으로 물러난 독재자라고 한 인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할아버지'라고 안타깝고 정겹게 눈물과 함께 부르는 시민들이 이화장 앞길을 꽉 메웠다고 한다. 경찰 총탄에 희생된 이들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그 지휘 계통의 정점에 있었던 이를 향해 눈물을 뿌리며 안타까워 할 수 있었는지, 장면 자체가 엄청난 반전이었다.

이화장으로 돌아와 경비실 옆 담장에서 몰려든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 전 대통령 (출처 정부수반유적 블로그)

한국TV에 정치 다큐멘터리 드라마라는 장르를 도입, 혹은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고석만 PD가 예전에 어느 잡지에 리승만 대통령을 연기했던 탤런트 최불암 씨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제 2공화국>이란 작품을 찍으면서 4.19 학생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나 이화장으로 돌아온 이승만이 하와이로 망명 길에 오르는 장면을 찍는 날이었다고 한다. 비서역을 맡은 연기자가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리면, 리승만의 부인인 프란체스카로 분한 아마추어 외국인 연기자가 한마디를 하고, 이들이 말하는 도중에 창을 등지고 선 리승만 역의 최불암 씨를 방 전체로 훑고 들어간 카메라가 클로즈업한다는 순서였단다.

고 PD는 다른 무엇보다도 외국인의 분명 어설플 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NG를 부르지 않는 관용을 베풀 것인가를 놓고만 사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예상대로 외국인은 대사를 뱉어 놓고 미안한 표정과 한께 엉거주춤한 미소를 지었고, 고 PD가 NG를 부르려는 순간, 최불암 씨가 대본에 나온 대로 비서에게 역정을 내는 소리를 지르며 돌아서는 바람에 카메라가 돌도록 가만 놔 두었다. 그런데 돌아서는 최불암 씨의 두 눈에서 대본에도 없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고 있었단다. 결국 NG 없이 그 날의 녹화 장면을 끝냈는데, 최불암 씨의 눈물에 대해서 고 PD는 이런 식의 얘기를 한다.

"어느 기록에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는 날 아침 이승만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최불암이 눈물을 흘렸다면 이승만도 분명 그 날 아침 눈물을 흘렸으리라고 확신한다."

실제 인물에 빙의한 절정의 연기가 발굴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계속 논란이 이는 과거의 장면들이 있다. 이렇게 최고의 연기자로 밝혀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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