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from Tokyo] 코로라가 만들어낸 축소지향 2.0

[Trend from Tokyo] 코로라가 만들어낸 축소지향 2.0

  • 양경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21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양경렬 칼럼니스트 ] 이어령 선생님이 쓴 베스트셀러 중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있다. 1982년에 일본어로 먼저 출간되고 이후 한국어로 번역해 다시 출간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일본에 대한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우려했지만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일본의 저명한 시사 정론지인 ‘프레지던트’지가 1994년에 특집으로 기획한 지난 100년 동안 출간된 ‘일본, 일본인론 명저 10선’에 루스 베네딕트의 (Ruth Fulton Benedict)의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과 더불어 뽑히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축소지향의 모형 중의 하나의 예로 도시락을 들었다. 도시락은 밥상을 축소한 것이다. 도시락은 밥상을 아주 작은 상자 모양으로 축소시켜 이동 가능한 음식으로 만들 것이다. 일본은 도시락 강국, 도시락 왕국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전국의 유명한 기차역에서 그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사용해서 도시락을 만들어 판매를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이 되면 근처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도시락을 구매하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은 한국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즐겨먹고 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할 수 있지만, 원래 도시락 문화는 한국 생활에 배어 있는 풍습이 아니었다. 한국은 도시락이 아니고 광주리에 음식상 그대로의 음식을 차려서, 이고 나르는 방식을 취했다. 작은 통에 빽빽하게 채워 넣으려는 일본인의 심리가 담긴 도시락은 축소지향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일본어판, 한국어판
축소지향의 일본인 : 일본어판, 한국어판

축소지향의 일본 문화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싶은 물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소니의 '워크맨'이다. 휴대용 CP 플레이어인데 휴대성이나 성능 면에서 압도하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하나쯤은 들고 다니거나 갖고 싶은 물건이 되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만들어낸 당시에 있어서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다. 일본은 전자 제품뿐 아니라 산업 현장, 생필품, 문구, 완구 등 많은 부분에서 작게 만드는 기술과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이런 축소지향은 제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언어, 시, 문학 같은 문화에도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문화와 의식까지, 그들의 삶 전체에 축소지향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1982년에 출간된 책이기에 지금의 일본 사정과는 약간 다른 점도 있지만 책에 기록된 일본인에 대한 습성은 현재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시대에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축소지향 2.0

최근 코로나가 새로운 측면에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습성을 다시 부활시켰다. 오사카에 9평방미터(2.7평) 베이커리 빵집과 13평방미터(4평)의 비어가든이 생겼다. 동네의 자영업자가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모두가 중견기업이 운영하는 체인점이고 점포수를 확대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종업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오픈까지의 준비기간도 짧고 대형 점포에 비해서 리스크가 낮다. 소규모이기 때문에 대형 점포에 비해서 단골을 만들기가 쉬어 고객 방문수의 기복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 매출이 어느 정도 안정된다는 장점도 있다. 서빙 가능한 손님 수를 통제해서 운영하고 오픈형 점포여서 코로나 감염 예방에도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다. 2.7평짜리 베이커리의 경우는 주로 은행의 ATM부스로 사용되었던 부지를 매입해서 매장으로 바꾼다. 외출을 자제하고 캐시리스가 발달하면서 폐쇄하게 된 기존의 ATM의 좁은 공간을 파고 든 것이다. 운영하는 회사는 BAOBAB이라고 하는 오사카에 본사를 둔 회사이다. 그리고 4평 비어가든은 일본에서 가장 작은 비어가든이다. 오리지널 크래프트 맥주를 제조해서 판매를 하는 Brewpub Standard라고 하는 회사가 운영한다.

코로나가 완전히 수습되기 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리리라 예상한다. 아니 아직 예측을 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한 소규모 점포의 경쟁력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점포를 운영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도 소규모의 점포를 복수로 운영하는 것이 대형 점포 한군데 몰아서 영업을 하는 것에 비하면 한 점포가 쉬더라도 다른 점포에서 매출을 기대할 수 있어서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2.7평의 베이커리 Takasho
2.7평의 베이커리 Takasho
일본에서 가장 좁은 4평짜리 비어가든
일본에서 가장 좁은 4평짜리 비어가든

하네다 공항에 등장한 한평짜리 신발 판매점

이번에는 1평짜리 신발 가게가 등장하였다. 신발 가게에는 신발도 없고 직원도 없다. 고객이 신발을 직접 골라서 신어볼 수도 없고 직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그런 이상한 신발 가게이다. 바로 일본 하네다 공항 제1터미널 ‘하네다 하우스’에 오픈한 1평짜리 무인 신발 가게이다. 앞에서 소개한 베이커리와 비어가든과 다르게 이번에는 판매 방식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여 무인 점포를 실현한 것이다. 신발 가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의 도전이다. 가게 방문자는 신발을 벗고 키오스크 앞에 올라서서 AR(증강현실) 렌즈 착용을 통해 실제 신발을 착용한 외관을 체크한다. 구매를 결정하면 측정 기기가 즉시 발 사이즈를 3D로 스캔하여 가장 잘 맞는 사이즈를 결정한다. 측정 시간은 약 10초. 사이즈 측정이 끝나고 점포내의 화면에 표시되는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읽으면 주문이 끝난다. 신발은 택배를 통해 집으로 배송되며, 도착한 구두의 디자인이나 사이즈가 맞지 않을 경우는 반품이나 교환도 가능하다. 일본 스타트업 '플릭핏 (Flickfit)'이 오픈한 무인 신발 가게로 2020년 12월에 하네다 공항에 제1호점을 오픈하였다.

1평짜리 신발가게 플릭핏
1평짜리 신발가게 플릭핏

신발 판매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

이 무인 신발 가게를 오픈한 주인공인 스타트업 '플릭핏(FlicFit)'은 3D 스캐닝 기술을 활용해 '신발 피팅' 분야에 집중해 소비자에게 맞춤형의 신발을 제공하는 신생 기업이다. 플릭핏은 고객 발의 3D데이터와 슈즈의 3D데이터를 매칭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고정밀 스캐너와 신발을 스캔하는 특수 기술, 독자적으로 개발한 AI 알고리즘을 접목한 추천 엔진까지 무인 신발 가게에는 첨단 기술로 가득 차 있다. 이 무인 신발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은 바로 ‘지속 가능한 신발’로 알려지고 있는 ‘페이퍼플레인(Paper Planes)’이라는 한국 브랜드라고 한다.

신발 선택, 시착, 구입까지 일련의 흐름을 완전 비접촉 방식으로 진행한다. 종래의 방식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스페이스가 필요하다. 또한 신발은 사이즈가 다양해서 매장에서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백야드 스페이스도 필요하다. 하지만 플릭핏은 이 모든 것은 1평으로 해결한다. 온라인만으로 진행되는 EC의 경우는 실제 신발을 신어보았을 때의 감각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래서 고안한 것이 시착을 AR 기술을 활용한 버추얼로 전환한 것이다. 실점포와 EC 모두의 과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소매점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매장 업체 측면에서는 재고 관리를 위한 창고 공간이나 접객을 하는 종업원이 불필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고객 측면에서는 새로운 쇼핑의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21년 여름까지 시험단계가 종료되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5 ~ 15개의 점포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통상 출점 대상이 될 수 없는 협소한 스페이스를 유용하게 활용해서 가게를 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역, 공항, 상업시설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골프장이나 스포츠 센터가 출점 대상이 될 수 있다. 코로나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환경과 축소지향 성향 일본인의 성향, 그리고 디지털 기술이라고 하는 세가지 요소가 만들어 낸 새로운 양식의 축소지향 점포가 업종의 경계를 넘어서 어디까지 진화해 나갈 지 앞으로 모습이 기대가 된다.

 


양경렬 박사 ADK Korea 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ADK 본사에서 글로벌 인사 업무를 담당. NUCB (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의 객원 교수로 활동하며 Global BBA, Global MBA에서 마케팅 강의를 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