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찐도사 감별법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찐도사 감별법

  • 김시래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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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 형제봉주막에 땅거미가 스며들 무렵이면 모시적삼에 길게 자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문을 열고 들어 와서 한잔술을 청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깊은 산속에서 면벽하는 수도승같은 풍모인데, 앉기만 하면 단숨에 막걸리 사발을 들이킨다는 것이다. 주인장 송영복(64)형이 밝힌 바에 의하면 이들의 대부분은 가짜도사, 헛도사로 밝혀진다고 했다. 시시껄렁한 수작으로 여기저기 참견하며 주막분위기를 흐리다가 나중엔 술값시비까지 붙는 부류라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생각도 깊고 행동도 단정하다며 외양이나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될 일이라고 했다. 상대의 입속에서 빠져나오는 말로 그 사람의 심지를 가늠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정확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 말에도 종류가 많아서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 있다. 전달하려는 의미와 상관없이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경우다. 유흥준선생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수덕사 대웅전앞 문화재 안내판의 경우를 들어 이런 전문가를 구분하는 식별법을 알렸다. "맞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한 이 건물은 주두 밑에 헛첨자를 두고 주소와 도로는 굽받침이 있으며, 첨차 끝은 쇠서형으로 아름답게 곡선을 두어 장식적으로 표현하고, 측면에서 보아 도리와 도리 사이에 우미량을 연결하여 아름다운 가구를 보이고 있다." 라고 써있다는 것이다.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세미나에 참석한 교수님이나 건축가들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테니 있으나마나 할 것이다. 전문가는 듣는 상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해는 전달력의 필수조건이다. 진짜를 구분하는 감별법이 하나 더 있다. 

얼마 전 MBC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가 "백상예술대상"의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다. 그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랍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놀면 뭐하니?’가 시즌제로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재석씨가 혼자 끌어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유재석씨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센스있는 백상예술대상에서 그 선물을 준비해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늘 겸손했던 프로듀서였기에 의아했다. 수상의 영광을 파트너인 유재석의 수고와 공으로 돌려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양보하겠다는 의도인 것은 잘 알겠다. 하지만 시청률을 올려준 것도 시청자고 시상식을 보는 사람도 시청자다. 그가 전한 말은 유재석과 둘이 만나 사석에서나 주고받을 내용이었다. 은연 중에 자화자찬으로 들리지 않을까하는 기우도 있었다. '무한도전'과의 차별화를 위해 싱글MC를 내세운 것도, 2년차를 맞는 인기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도 결국 연출자인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까탈스러운 평가라고 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공의 이력이 쌓인 사람들이 흔히 잊기 쉬운 덕목이 역지사지의 상대적 관점이다. 진짜 전문가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한발 더 나가보자. 상대를 배려한 말은 어떤 말일까?

이상헌 작가는 그의 책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마을"에서 한옥마을의 멋을 우리가 늘 접하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했다. (수덕사 대웅전의 문화재 안내판과 비교해보라)  “한옥에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있어 끊임없이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붕 선이 리듬을 타고 추녀 끝에 걸리면, 벽면을 채운 재료들이 질감의 변화를 이끌며 흥을 돋운다. 한옥에서 시작한 율동감은 자연스럽게 마을로 이어진다. 가을이 봄처럼 화사한 도래마을이라면 율동감이 당연 도드라진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강한 율동감이 몸을 자극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흥겹다.(245쪽)". 라고 어깨에 힘을 뺀 글로 전했다. 여기에 읽는 사람의 입장까지 보태고 있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 방에 앉아 머름(문턱보다 높은 창턱)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211쪽)"라고 덧붙였다. 글과 마주한 독자에게 한옥을 대하고 인문을 살피는 지혜까지 전수해서 글의 최종 목적지로 독자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진정한 고수는 쉽게 말하되 상대의 입장까지 담아낸다. 전문가의 자격은 내가 주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인정하고 달아주는 훈장이다. 부처님도 상대에 따라 설법을 바꾼다고 했다. 일류요리사도 먹는 사람의 입맛과 체질에 따라 간을 맞추고 재료를 쓸 것이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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