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헨리 포드와 소니의 워크맨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옛날 옛적에’ 석유(Gas)를 연료로 쓰는, 사람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이 있었다. 100년 넘게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고 쓰이고 있었다. 누군가 그 제품이 전기로도 추진되게 했다. 공기 오염도 줄어들며 환경에도 좋고 깨끗했다. 몇몇 모험심 강한 용감한 사업가들이 전기로 그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로를 개척하려 했다. 그러나 재료 값이 많이 들었다. 그 제품이 운영될 수 있는 인프라가 뒷받침되지도 못했다. 당연히 대량 생산하기도 힘들었고, 재료비 부담도 있어 제품의 가격이 기존의 석유로 작동되는 것보다 훨씬 비싸서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굴하지 않은 기업가들은 전기로 작동되는 제품을 혁신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결국 그들은 재료비도 떨어트리고 제품의 수명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을 개발했다.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도 설치되어 웬만한 가구에서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재료 부문에서 획기적인 혁신이 일어났던 해로부터 10년 안에 선진국에서는, 최소한 미국에서는 석유로 작동되던 제품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위의 제품이 무엇일까? 실리콘밸리의 미래 트렌드 컨설팅을 하는 회사가 주최한 워크숍에 갔을 때 연사로 온 한 친구가 이런 얘기와 물음을 던지며 자기 세션을 시작했다. 바로 대답하기는 힘들다. 누군가가 자동차라고 대답했다. '옛날 옛적에'라고 시작했으니, 자동차는 아니다. 게다가 자동차는 아직도 가솔린 내연기관이 절대다수니까 해당하지 않는다. 정답은 바로 조명등(燈)이다. 강연 시작하며 관심도 끌려고 퀴즈 형식으로 했는데, 되씹어보니 여러 가지로 말이 되는 재미있는 비유이다.
호롱불로부터 시작하여 가스등이 나와서 서구의 경우 거리와 가정에 설치되었다. 기술적인 혁신이 가스등의 역사에서도 꽤 있었다. 가스를 적게 쓰고도 더 오래 탈 수 있게, 그을음이 덜 생기게, 연기가 적게 나오도록 하는 개선이 줄을 이었다. 그을음이 쉽게 닦아지는 외장재료들이 나왔고, 외양을 중시하는 이들을 위한 외부 디자인도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도 했다. 자동차로 치면 대량생산, 연비 개선, 친환경, 외장디자인 등의 자동차에서 이슈가 되는 기술들이 가스등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요소였고, 상당한 개선들이 이루어졌다.
자동차에서도 사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물론 가스등과 자동차가 다른 부분이 훨씬 많지만, 이런 극한의 경우까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같은 친구가 헨리 포드 공장의 생산량 증가 얘기를 하며 질문했다.
연간 25,000대를 생산하다가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하고 3년이 지나서 몇 대를 생산했을까? 70만 대였다.
그리고 또 3년 후는? 2백만 대였다.
이런 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것이야말로 바로 ‘만들어간 미래’였다. 소비자의 상상과 기대를 넘어서 이룩한 혁신의 사례가 있다. 그 대표 중의 하나로 소니의 워크맨을 들곤 한다. 어느 책에서 워크맨 개발의 아이디어를 냈고, 주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모리타 아키오의 일화를 봤다.
워크맨에 대한 시장조사를 실시했을 때 모리타 아키오의 안목이 진가를 발휘했다. 시장조사 결과는 최악이었다. 직원들조차 이 제품이 팔릴 리 없다고 결사반대했다. 워크맨 출시를 밀어붙이면서 했던 모리타 아키오의 말은 두고두고 회자한다. "고객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모른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내놓기 전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면 소비자들은 아마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말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난 모리타 아키오가 저렇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소니에 대해서는 '80년대 말부터 꾸준히 몇 권의 책과 기사를 나름으로 열심히 봐왔는데, 저런 기록을 본 적이 없다. 모리타 아키오의 자서전이나 소니의 공식 기록서에도 저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몇몇 책에서 '소니의 탄생 비화'라고 하며 저 말을 실었다.
'더 빠른 말'의 비유는 사실 헨리 포드의 말로 많은 이들이 혁신을 얘기할 때 인용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것도 후대에 만들어낸 것이고, 헨리 포드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헨리 포드의 자서전이나 그의 전기에서 저런 말이 언급되지 않는다. 어느 경영 저술가의 말로는 저 인용구가 헨리 포드의 말이라며 나온 게 2002년이 처음이란다. 모리타 아키오가 워크맨 개발할 때 헨리 포드를 들어 말한 것을 보고는, 만들어냈다고 갖다 붙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리타 아키오는 1970년대에 저런 식 비유를 하지 않았다. 그가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라고 하며 워크맨을 밀어붙이며 멋진 리더십과 통찰력을 보여준 건 맞지만 저런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도 아주 드라이한 사람으로 비유를 즐겨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인용구 중에 이런 식의 실제 인물이 하지도 않은 얘기인 게 아주 많다. 멋진 반전 느낌이 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용할 때는 꼭 체크할 일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