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근무수칙] 19.단순함.
본질, 2/3.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본질은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다. 이 모순된 말은, 광고라는 일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브랜드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쌓고 또 쌓아 사람의 기억에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 하나를 만드는 데 수십, 수백의 말과 이미지가 필요하다. 단순한 한 줄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복잡한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리된 언어는 대부분 버려진다. 정제된 한 문장이 나오는 데 필요한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들이다. 본질은 언제나 단순하게 보이지만, 그 단순함을 확보하는 여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흔한 실패는 말이 너무 많거나, 너무 없거나이다. 전자는 브랜드가 스스로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할 때, 후자는 아무 말 없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출발한다. 성공하는 브랜드는 언제나 말의 수가 아니라 방향에 집중한다. 그 말들이 향하는 곳이 고객의 삶 한가운데일 때, 비로소 의미가 축적된다. 의미 축적은 단어의 양이 아니라, 반복과 맥락의 일치로 이루어진다. 어떤 브랜드의 로고를 보면 소리 없이 말이 들리는 이유는 그것이 오랫동안 일관된 의미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건 하나의 로고가 아니라, 반복된 시간과 경험이 만든 상징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보다 먼저, "고객은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본질이다. 고객의 기억 안에서 브랜드가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카피와 예쁜 비주얼도 무용지물이다. 기억 설계란 단지 예쁜 말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말을 반복하게 만들고, 기억 속의 구조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좋은 브랜드는 말보다 구조를 만든다. 고객이 반복해서 꺼내보고 싶은, 사용하고 싶은, 공유하고 싶은 구조. 그 구조가 작동할 때, 브랜드는 비로소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하게 된다.
광고의 본질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전략과 철학의 결합이다.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그 브랜드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 문장은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단순함을 얕보면 안 된다. 단순한 언어는 단순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깊고 복잡한 이해 끝에서 비로소 떠오른다. 그래서 진짜 단순한 카피는 오랜 시간 정제된 사유의 결과다. 그런 문장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쉬운 말은 많지만, 쉬운 진실은 적다. 우리는 그 적은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모든 복잡한 언어의 숲을 걸어야 한다.
결국 본질은 단순함이 아니라, 단순함의 증거다. 그 브랜드가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브랜드의 이야기 속에서 단순한 메시지를 찾기보다, 그 메시지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복잡한 여정을 걸어왔는지를 읽어야 한다. 본질은 말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본질은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