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Perform or Perish " 브랜드는 작동하는 구조다: 시스템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의 시대 릴랜드 마쉬마이어, 콜린스 공동 창립자

2025-06-23     송창렬 크랙더넛츠 대표

2024년, 나는 브라인언 콜린스(Brian Collins)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브랜드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다시 던진 바 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그의 동료이자 콜린스(Collins) 공동 창립자인 릴랜드 마쉬마이어(Leland Maschmeyer)를 2025 D&AD 현장에서 마주하게 됐다. 이번 인터뷰는 단순한 연속이 아닌, 브랜드와 디자인, 그리고 비즈니스 전략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적 대화였다. 브랜드는 이제 단지 ‘정체성’이 아니라, 기업이 시장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증명하는 구조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강조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브랜드는 곧 Meaningful Difference다.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당신은 단지 커머더티일 뿐이다.”

AI와 디자인 산업의 미래

송창렬: 디자인 업계 전반이 생성형 AI의 등장을 두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콜린스도 그런 위기감을 체감하고 계신가요?

릴랜드: 당연하죠. 업계 안에는 잘 나가는 분야도 있고 어려움을 겪는 분야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의 도전과제가 하나 있어요. 바로 AI입니다. 특히 생성형 AI는 피할 수 없는 미래죠. 당장은 아닐지라도, 투자 규모를 보면 너무나 명확해요. 우리는 모두 이 질문에 맞닥뜨려야 합니다. "AI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송창렬: 급변하는 디자인 환경 속에서 많은 에이전시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콜린스는 이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나요?

릴랜드: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앞으로 5년, 10년 동안 우리가 어떤 회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에너지를 쏟고 있어요.

콜린스의 사업 확장 방향

송창렬: 저는 콜린스가 단지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점점 더 전략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실제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릴랜드: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본질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핵심은 브랜드 정체성 전략이지만, 이제는 단순히 디자인이 아니라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이라는 질문으로 확장됐습니다. "당신의 회사는 왜 다릅니까?" 이 질문이 핵심이에요. 많은 기업들이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결국 가격 경쟁력도 없고, 브랜드 자산도 흔들리게 됩니다. 이 차이가 없다면, 그 회사는 그냥 커머더티일 뿐이니까요.

송창렬: 그러니까 이제 콜린스는 디자인 회사를 넘어, 일종의 전략 파트너에 가까워진 거군요?

릴랜드: 맞아요. 우리는 단순히 시각적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PE 펀드, CEO, 이사회와 협업하면서, 브랜드가 아닌 기업 그 자체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데 개입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전략, 자본은 이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이 셋은 함께 움직여야 진짜 '밸류 크리에이션'이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디자인과 전략, 그리고 자본의 언어

송창렬: 제가 최근 PE(Private Equity)와 일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요. 그들과의 협업에서 디자이너 혹은 브랜딩 파트너로서 꼭 주의하거나 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릴랜드: PE와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전달의 언어'를 바꾸는 겁니다. 그들은 감각이 아닌 숫자와 구조로 판단하죠. 따라서 우리가 설명해야 할 것은 '이 디자인 결정이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가'입니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고객 충성도와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줘야 해요.

그리고 자본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디자인이 기업의 EBITDA, 매출, 시장 포지셔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이게 되지 않으면, 좋은 아이디어도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디자인이 어떻게 'perform'하느냐예요. 단순한 시각적 완성도가 아니라, 전략과 재무적 결과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저희는 디자인 시스템을 ‘Augments’라는 개념으로 확장해, 전략과 퍼포먼스를 모두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송창렬: 네, 정말 공감됩니다. 브랜딩이든 광고든, 그 자체만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결국 그것이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에 어떤 실질적 영향을 주느냐죠. 그래야만 우리가 진정한 파트너가 되는 거고, 단순한 공급자를 넘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랜드 시스템의 새로운 역할

송창렬: 브랜드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을 단지 언어처럼만 다루는 것이 한계라고 보시나요?

릴랜드: 맞아요. 우리는 수년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말하느냐',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의 문제로 다뤄왔죠.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죠. 지금은 브랜드가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송창렬: 그렇다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할까요?

릴랜드: 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단순한 ‘시그널링(Signaling)’을 넘어야 한다고 봅니다. 브랜드는 이제 단지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가 아니라, 비즈니스 기회를 여는 도구이자, 조직의 역량을 증강시키는 장치, 그리고 성과(Performance)를 설계하는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송창렬: 단순히 정체성을 정의하는 차원을 넘어, 브랜드가 실제로 비즈니스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릴랜드: 그렇죠. 우리는 더 이상 브랜드를 로고나 슬로건으로만 볼 수 없어요. 브랜드는 이제 기업 내부의 실행 체계와도 연결돼야 하고, 외부 시장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야 해요. 다시 말해, 브랜드는 하나의 ‘운영 체계(Operating System)’가 되어야 하는 거죠.

송창렬: 그럼 그렇게 작동하는 브랜드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돼야 할까요?

릴랜드: 저는 앞으로의 브랜드 시스템이 세 가지 축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봐요. 

  1. 개념(Concept): 브랜드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에 대한 철학과 목적.
  2. 심미성(Aesthetic): 그 철학을 감각적으로 해석하는 방식.
  3. 퍼포먼스(Performance): 그리고 그것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구조.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브랜드는 진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송창렬: 결국 브랜드는 비즈니스 전략, 실행, 성과를 연결해내는 실질적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릴랜드: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콜린스에서 ‘Augments’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시스템을 확장하고 있어요. 그건 단순히 디자인 시스템이 아니라,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실행하고 성과를 만드는지를 설계하는 구조입니다.

디자인 업계의 전환점: 쿼츠 혁명과의 비유

송창렬: 올해 D&AD에서 하신 강의에서 '쿼츠 혁명' 이후 고급 시계 산업이 어떤 전략으로 살아남았는지를 디자인 업계와 비교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릴랜드: 물론이죠. 시계 업계는 쿼츠 기술의 등장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정확하고 저렴한 시계가 대량 생산되면서 고급 시계 브랜드들은 거의 존재의 이유를 잃을 뻔했죠. 하지만 그들은 방향을 바꿔 ‘컴플리케이션(Complication)’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장인 정신, 기술적 정교함, 문화적 상징이 결합된 정교한 시간 예술로 자신들을 재정의한 겁니다.

디자인 업계도 지금 비슷한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생성형 AI가 디자인의 외형적인 스타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질문해야 해요. 우리가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단지 보기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브랜드와 비즈니스의 복잡성을 시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점을 ‘디자인의 쿼츠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Augments’, 즉 브랜드 시스템이 어떻게 실제 퍼포먼스를 강화하느냐입니다. 그것이 우리 업계의 ‘컴플리케이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디자이너는 감각을 넘어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성능을 입증하는 ‘전략적 설계자’로 진화해야 합니다.

송창렬: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특히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여전히 가격 경쟁에 치우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전략적 진화의 메시지가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성과를 중심에 둔 디자인으로 나아가야만 업계 전체의 가치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릴랜드가

 

학습하는 조직, 콜린스의 문화

송창렬: 조직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콜린스는 '로우 파워 갭(Low Power Gap)' 문화를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릴랜드: 맞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자 해요. 가장 주니어한 디자이너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배울 수 있거든요. 우리는 콜린스를 '학습 병원(Learning Hospital)'이라 부릅니다. 새로운 접근, 다른 관점이야말로 우리 존재 이유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 프로젝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사람은 현업에 있는 디자이너들입니다. 그들의 관찰, 감정, 직감이야말로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인사이트예요. 그래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파워 갭'을 줄이고, 모두가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려고 합니다.

디자인과 비즈니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송창렬: 마지막으로, 한국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 리더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릴랜드: 한국의 디자인 수준은 세계적이에요. 하지만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디자인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들인 동시에, 가치와 가격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업계 전체의 가격대가 올라가고, 더 많은 기회가 생깁니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의 순간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디자이너들이 너무 쉽게 회사를 창업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냥 디자인을 잘한다고 해서 회사를 세우는 건 위험합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수익 구조, 고객 이해, 가격 전략을 모르면 결국 멋진 작업을 하고도 생존하지 못하게 되죠. 회사를 세우고 싶다면, 반드시 '사업'을 공부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디자인 스튜디오는 아름다움만으로 유지되지 않아요.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송창렬: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그리고 전략까지 바라보는 관점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릴랜드: 저도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송창렬

마치며

릴랜드와의 대화는 그야말로 날카롭고, 영감으로 가득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브랜딩을 넘어 비즈니스, 그리고 조직이 나아가야 할 본질적인 방향을 짚어냈다. 앞으로 브랜딩 에이전시는 단지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브랜드를 통해 세상을 더 잘 작동하게 만드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브랜드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대화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