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근무수칙] 25.골드러시, 진짜 승자는?

골드러시의 승자는 금을 캐러 간 광부들이 아니었다.

2025-06-30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스타트업 생태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나 검토하고 있다. 기획 초기에는 그저 신생 기업들의 아이디어 경쟁과 기술적 파열음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료를 들추고, 논문과 시장 동향을 읽고, 인터뷰를 모으는 과정에서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중심이 정말 ‘스타트업’인가? 아니면, 스타트업이라는 환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더 정교한 설계인가?

리서치를 거듭할수록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산업의 메커니즘은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창업자들이 아니라,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 아직 창업하지 않은 이들, 창업하길 꿈꾸는 이들에게 쏠려 있다. 그들에게 특강을 열고, 학원을 차리고, 자격증을 팔고, 참고서를 출간하는 이들이 시장의 중심에 있다. 자본은 그쪽으로 흐른다. 투자자도, 정부의 정책도, 심지어 스타트업 지원 기관조차도. 실제 창업자가 아니라, 예비 창업자들만 가득한 생태계. 우리는 과연 창업을 돕고 있는가, 아니면 ‘창업 준비자’만을 위한 별도의 시장을 또 하나 만들고 있는가?

이 구조를 보며 자연스레 한 비유가 떠오른다. 골드러시의 승자는 금을 캐러 간 광부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청바지를 판 리바이스가 진짜 승자였다. 미지의 땅을 파헤친 이들은 허탕을 쳤지만, 그 허탕 속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수익을 창출한 이들은 장비를 팔고, 옷을 팔고, 정보를 팔았던 사람들이다. 지금 스타트업 생태계 역시 다르지 않다. 플랫폼을 만들고, 앱을 론칭하고, 자본을 유치하려는 수많은 ‘광부’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매출을 안정적으로 쌓아가는 이는 그들에게 교육을 팔고, 입문 강의를 열고, 멘토링을 유료화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구조가 한 번 굳어지면, 생태계 전체가 ‘금광을 캐는 사람들’이 아니라 ‘금광을 파는 상품’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데 있다. 혁신이 아니라 혁신 교육, 창업이 아니라 창업 코칭, 실행이 아니라 실행 지원이 핵심이 되는 패러독스. 이 패러독스 속에서 진짜 스타트업은 점점 고립되고, 리스크는 오롯이 창업자에게만 떠넘겨진다. 반면, 스타트업 주변부에 있는 이들은 비교적 안전한 시장에서 꾸준히 이익을 쌓는다. 투자보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개발보다 컨설턴트가 되는 것이 더 빠르고 안정적인 길이 된다.

투자는 창업자가 받지만, 수익은 그를 가르친 사람에게 돌아간다. 리스크는 개인이 짊어지고, 시스템은 주변이 챙긴다. 그것이 우리가 만든 창업 생태계의 이면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유행이 될 때마다, 나는 묻고 싶어진다. 지금 누가 ‘청바지를 팔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광부의 곡괭이에, 아니면 리바이스의 마케팅에?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