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은'투머치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 의료진의 '쉼'을 설계하라

환자들은'투머치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 의료진의 '쉼'을 설계하라

  • 유승철
  • 승인 202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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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근로자의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 정도는 매우 높습니다

꼭 코로나 이슈가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업무 강도는 매우 높습니다. 업무의 강도가 높은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바로 ‘업무의 밀도’ 입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복잡한 양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병원 업무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하지만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업무 실수가 만들어내는 부정적 결과는 엄청납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업의 무게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병원 근무자들은 항시 긴장된 상태로 일상의 업무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당연하겠지만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There is no free lunch)” - 타 직종에 비해 높은 보수는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병원 근무는 요즘 시대적 화두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개념이나 워라벨이라고 통칭되는 삶과 일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에 맞지 않는 직장이기도 합니다. 금전적 보상이 다른 직장보다 더 넉넉하다고 하더라도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 정도에 비견한다면 그렇게 높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 근무하다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MZ세대(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에게 병원이 기피 직장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 2021년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MZ 세대의 실제 조기퇴사 이유에서 2위가 직장-동료와의 갈등이었습니다. 낮은 연봉 수준이 가장 큰 이유였다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MZ세대 조기퇴사 이유 설문조사 결과 (출처: 잡코리아)
MZ세대 조기퇴사 이유 설문조사 결과 (출처: 잡코리아)

병원의 '환자중심 경영'에서 그 본질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하나 더 더해진 것이 바로 ‘소비자 중심(consumer centric)’ 또는 ‘소비자 만족’ 병원 맥락에서 이뤄지는 ‘환자중심 경영’ 입니다. 원래 말의 취지와 맞지 않게 병원 현장에서 이 개념이 오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환자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무대포적 서비스 살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소위 ‘투머치 서비스(too much service)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환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 친절하다 보니 환자 입장에서 일면 대접받는 느낌을 받겠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고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실제로 제가 몇 달 전에 종합건강검진 때문에 서울의 한 유명 대학병원을 찾았습니다. 그곳 건강검진센터 프론트에서 응대하는 간호사님들이 지나칠 정도로 저를 환대해줘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런 환대를 받은 적이 없어서인지 매우 어색했습니다] 마치 5성 호텔 서비스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병원 근로자 입장에서 얼마나 부담을 느낄까요?  

위 사례처럼 병원의 지나친 환대로 사례와 같은 투머치 서비스(too much service)는 환자의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데 기여하지도 못할 뿐 더러 서비스 응대 직원에게 지나치게 신체적 또는 심적인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집중해야 할 서비스의 핵심 소비자 기대가치는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고객 서비스 제공을 조직원에게 강요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카페에서 문법에 맞지 않는 사물 대상 존칭을 쓰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님 나오셨습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글로벌 최고라고 자부하는 S 커피숍에서 무리하게 특별 프로모션을 집행하다가 체력이 소진된 직원들의 단체적 저항을 마주하게 된 것에서 여러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직원을 기계처럼 대했을 때 다양한 저항을 마주하게 되고 SNS미디어로 부정적 소통이 무한 바이럴되는 요즘에는 기업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S커피숍 직원들이 진행한 2021년 10월 파트너 트럭시위 (출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00815573426804)
S커피숍 직원들이 진행한 2021년 10월 파트너 트럭시위 (출처: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00815573426804)

투머치 서비스는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투머치 서비스는 위 사례를 포함한 조직 외부에 다양한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이제 병원 근무자들에게 중심적인 업무 외 기타 업무에 대해서는 긴장감을 조금 풀 수 있는 ‘긴장 완화 시스템’이 꼭 필요합니다. 동일 총량의 업무를 나누려면 다양한 근무자 간 업무 코디네이션(task coordination)이 필수적이겠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업무 안배를 위해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서비스 업무 재조정을 통해 직원들은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더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 남는 시간 시간에는 심적 여유를 가지고 환자를 응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한 일본의 생물학 연구에서는 ‘노는 개미’가 있어야 조직이 잘 조직이 잘 운영된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을 개미 조직에 비유하는 것이 환원주의적 논리 비약임을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여러 흥미로운 시사점을 전해줍니다. 이 연구에서 개미집단에는 항상 20~30%의 일하지 않는 개미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일하는 개미들이 지쳐 일할 수 없게 됐을 때 놀던 개미들이 대신 일을 해 집단존속을 가능케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구성원 모두가 일제히 피로해지고 결국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집단의 멸망이 빨라지는 데 비해 일하지 않는 개미가 있는 집단은 역설적으로 오래 존속한다고 합니다. [원문: 홋카이도(北海道)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長谷川英祐) 교수(진화생물학) 연구팀 발표자료].   

노는 개미 연구자 - 홋카이도(北海道)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長谷川英祐) 교수
노는 개미 연구자 - 홋카이도(北海道)대학 하세가와 에이스케(長谷川英祐) 교수

하버드 대학교의 산업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메이요(George Elton Mayo, 1880~1949) 교수의 연구는 여전히 실무에 많은 함의를 줍니다. 7년 반이나 넘는 장기간의 현장실험 끝에 ‘인간은 타인에 의한 감정적 관심에 따라 생산성이 변동한다’는 사실을 발견(1933년 발간)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결과라는 것에 그 의미가 큽니다. 바로 그 유명한 호손 연구(Hawthorne Experiment)입니다. 공장의 노동자가 실험 대상이 된다고 관심을 받는 순간 상사와 동료들 간에 인간관계를 좋게 만듦으로써 생산성이 올랐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병원 현장은 여전히 메이요의 반대라고 볼 수 있는 테일러(Taylor)의 기계적 성과보상 기반의 인사관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음’은 우리들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호손 연구(Hawthorne Experiment)의 실험장소로 쓰인 호손 전화기 생산공장 (출처: https://news.harvard.edu/gazette/story/2011/12/rethinking-work-beyond-the-paycheck/)
호손 연구(Hawthorne Experiment)의 실험장소로 쓰인 호손 전화기 생산공장 (출처: https://news.harvard.edu/gazette/story/2011/12/rethinking-work-beyond-the-paycheck/)

실제로 병원에서 일어나는 많은 위기들은 주로 ‘인적요인(human factor)에서 발생합니다. 단순히 환자와 연결된 의료적 사고뿐 아니라 근로자의 고의적 태만, 비리, 자살 등 병원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잠재적 인적 사고들이 늘 상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병원 경영자들은 이러한 인적요인으로 발생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병원에서 ‘투머치 서비스’를 지양하고 중요 서비스에 집중하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병원 내 소진(burn out)을 조사한 결과 대학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에서 소진이 더 컸다고 합니다(2015 Today’s Hospitalist Compensation & Career Survey). 기업이 운영하거나 지역의 소규모 의원의 경우 업무의 복잡성이나 그 밀도가 더 낮았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근무자에 대한 밀착 돌봄이나 체계적인 대응을 통해 소진을 낮췄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내의 상황은 관련 조사가 적어서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비슷한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생활은 인생의 반입니다. 가족생활이 반이라면 ... 그 중요함은 막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자신의 직무에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이 돈보다도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2015 Today’s Hospitalist Compensation & Career Survey (출처: https://www.todayshospitalist.com/respect-burnout-hospital)
2015 Today’s Hospitalist Compensation & Career Survey (출처: https://www.todayshospitalist.com/respect-burnout-hospital)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시스템 설계에 있어서 다양한 정보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편입니다. 예컨대 인공지능 디지털 사이니지를 통해서 병원 진료과 위치 안내와 환자의 현재 진료 현황에 대한 안내를 편리하게 한다면, 응대 담당자들이 감당해야하는 반복적인 대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투머치 서비스가 조직의 자랑이었던 시절은 이제 저물었습니다. 고도지식 노동은 적정 휴식과 정서적 안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서비스 문제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마치 대학교수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연구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병원 근로자 개개인이 병원 조직생활에 만족하고 장기간 근무를 이어갈 수 있는 조직 문화와 조직 시스템 개발이 절실합니다.

다양한 비접촉 센서를 통한 병원 내 업무 관리(2020년 Nature 제공 논문)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0-2669-y)
다양한 비접촉 센서를 통한 병원 내 업무 관리(2020년 Nature 제공 논문)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0-2669-y)

해외 병원들의 조직 시스템도 참고할 만합니다. 미국의 다수 병원들이 병원 근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직원 액티비티와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원 근로자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활동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신체적 · 정서적 소진을 예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진을 막기 위해서는 병원 조직원들이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또 신규 환자들을 모셔올 수 있을 정도로까지 병원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야 합니다. 충성도 제고를 위해서 조직에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소통에 대한 수월성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엠디엔더슨 병원(MD Anderson Cancer Center)의 머그컵 (출처: https://childrensartproject.org/collections/md-anderson/products/mda-bistro-ceramic-mug-15oz)
엠디엔더슨 병원(MD Anderson Cancer Center)의 머그컵 (출처: https://childrensartproject.org/collections/md-anderson/products/mda-bistro-ceramic-mug-15oz)

국내 어느 병원 직원들이 소속 병원의 기념품을 사고 자랑할 수 있을까요? 한번 고민해볼 만합니다. 환자들이 자랑스러워하고 또 조직원들이 자랑스러워할 병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제 책상에는 2019년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엠디엔더슨 병원(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직접 사가지고 온 머그컵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병원 기념품을 구매하고 책상에 두면서 뿌듯하게 여길 수 있는 병원이 과연 국내에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직원뿐 아니라 환자들도 퇴원할 때면 병원 기념품을 사가지고 퇴원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처럼 국내에도 환자들과 직원들이 모두 자랑할 만한 그런 병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K-컬처로 불리는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2021년 현재 K-병원도 행복한 직원이 만드는 새로운 발상을 통해 세계의 의료 서비스를 선도할 수 있을 기대를 해 봅니다. 

 


인용 

  • Greenglass, E. R., & Burke, R. J. (2002). Hospital restructuring and burnout. Journal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administration, 89-114.
  • Hasegawa, E., Ishii, Y., Tada, K., Kobayashi, K., & Yoshimura, J. (2016). Lazy workers are necessary for long-term sustainability in insect societies. Scientific reports, 6(1), 1-9.
  • Haque, A., Milstein, A., & Fei-Fei, L. (2020). Illuminating the dark spaces of healthcare with ambient intelligence. Nature, 585(7824), 193-202.
  • Mayo, E. (1933). The Hawthorne experiment. Western electric company. 2016). Classics of organization theory, 134-141.

※ 닥스미디어(http://docsmedia.co.kr/) 칼럼을 공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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