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구경꾼에서 자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구경꾼에서 자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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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1980년대의 중남미에는 정부군과 반정부 게릴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국가들이 꽤 있다. 군부 출신들이 정권을 잡고 철권을 휘두르며, 그에 대한 저항으로 산속으로 들어간 반군들도 있고, 전통 형태의 산적에서 발전한 무리도 있었다. 한편으로 1917년의 러시아로부터 중국, 쿠바의 혁명을 본보기로 삼아 세계혁명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세력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대표가 페루의 ‘빛나는 길’ 반군 조직이었다. 3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내전의 한쪽 편이었던 ‘빛나는 길’의 지도자는 대학교 철학 교수 출신으로, 중국 공산화를 이끈 마오쩌둥의 사상을 표방하며 ‘마오주의자’로 일컬어졌던 아비마엘 구스만이라는 인물이었다.

5개월간에 걸친 치밀한 준비 끝에 1992년 9월 페루 정부군은 수도인 리마 시내 안 평범한 주택가에 위치한 구스만의 아지트를 급습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구스만을 체포한 페루 정부군은 구스만이 술에 취해 여성과 함께 춤을 추는 동영상을 체포 작전 전개 모습과 함께 공개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다. ‘빛나는 길’ 조직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겨냥한 심리전이었는데, 그 절정은 체포된 구스만이 동물 우리 같은 감옥에 갇혀 동물처럼 포효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이었다. 가로 줄무늬에 죄수 번호가 적힌 전형적인 죄수복을 입은 구스만은 동물원 관람객처럼 그가 갇힌 철망을 둘러싼 인사들에게 격한 제스처와 함께 고함을 치고 있었다. 혹시나 생길지도 모르는 동정심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죄수로 낙인찍은 이들을 구경거리로 삼는 방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세기 말의 프랑스대혁명을 상징하는 브랜드 요소 중에는 사람들의 목을 쉽게 치도록 의사 출신 인물이 고안해 만들어 그의 이름을 따서 기요틴(Guillotine)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말로는 ‘머리를 자르는 나무틀’이란 아주 직설적으로 옮겨서 단두대라고 한다. 단두대가 설치되어 활용된 가장 유명한 장소가 바로 파리 시내 콩코르드 광장이었다. 처형 당할 이들은 보통 형장인 콩코르드 광장에 이르기까지 페루의 반군 지도자인 구스만이 갇힌 것과 같은 동물 우리 같은 이동식 감옥에 갇혀 길거리 구경꾼들의 야유와 침 세례와 폭력을 견디어야 했다. 프랑스에서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할 수도 있었으나, ‘조국을 구두 밑창에 붙이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란 말을 남기며 체포되어 간단한 재판 절차를 거쳐 단두대로 향했던 조르주 당통이라는 인물이 있다. 초기에 혁명 지도자였다가 나중에 반혁명 분자로 몰린 그는 프랑스대혁명이란 드라마의 가장 낭만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가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카페테라스에 앉아 자기 모습을 크로키로 그리는 한때 친구이자 혁명의 동지였던 화가 다비드를 보고 소리쳤다. "야, 이 종놈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던 중국인 청년 저우 수런(周樹人)은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수업 시간에 일본인 교수가 보여주는 사진으로 보게 된다. 처형 장면보다 거의 무표정으로, 아니 기대하고 죄수와 처형을 바라보는 구경꾼 중국인들의 모습에 저우수런은 충격을 받는다. 일본군보다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도 역사의식과는 담을 쌓고 같은 중국인의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즐기기까지 하는 이들의 정신을 일깨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사람의 육체를 고치는 의술을 포기하고, 그는 중국인들의 정신을 바로잡는 길로 문학을 택한다. <아큐정전>, <광인일기>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루쉰(魯迅)이 그렇게 탄생했다.

구경거리와 구경꾼의 역학관계에는 언제라도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콩고 출신의 오타 벵가를 동물원에 전시한 사람을 두고 흑인 성직자 대표단이 ‘아프리카인을 비하한 것만큼이나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당통이 처형장에 끌려가는 그를 그리는 화가의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친구 다비드를 두고 ‘종놈’이라고 했을 때, 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지는 자명했다. 몰자각의 구경꾼이 있기에 위대한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이자 선각자 루쉰의 출현이 가능했다. 그런 반전을 기대하며 사람을 구경꾼으로 모는 전시를 계속 꾀하기도 하나 보다.

영국의 런던동물원에서는 2005년 8월 연휴 기간 4일 동안 8명의 사람을 동물 우리에 전시하는 행사를 했다. 동물학협회와 함께 선발한 주로 20대 남녀로 구성된 이들은 아침에 동물 우리로 출근하여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으로 주요 부위만 가린 채, 사육사가 챙겨주는 음식을 먹고, 시키는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퇴근했다. ‘동물의 일종인 인간’을 보다 깊게 관찰하는 학문적 목적을 내세웠지만, 홍보 이벤트에 능했던 런던동물원의 행태를 보건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수동적인 구경꾼이 되고 싶은 인간 본능에 자극을 주며, 자신 내부의 자의식을 깨우는 반전의 장치로 기획된 행사라고 하는 게 더욱 그럴듯했을 것 같다.

런던동물원 인간 전시를 보도한 더가디언 (2005.8.26)
런던동물원 인간 전시를 보도한 더가디언 (2005.8.26)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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