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을 만드는 조사, 없애는 조사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을 만드는 조사, 없애는 조사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1.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언제부터인가 조사를 하면 즉각적이고 1차원적인 조사 결과만을 따지는 풍조가 조성됐다. 시험으로 치면 단답형이나 사지선다형의 1 대 1의 답이 나오도록 구성한 설문들이 대부분의 조사에서 쓰인다. 조사 의뢰자가 그렇게 요구하니까 그렇게 하게 된다고 한다. 복수의 광고물이나 제품 디자인 등을 놓고 어떤 것이 좋을까 소비자의 소리를 들어서 결정하는 문제들에 대해 그런 식의 단순한 설문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한다. 언뜻 옳은 얘기 같지만 조사 결과 수치 뒤에 숨는 비겁함 혹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보인다.

애론(Aeron)이란 회사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사무용 의자들을 내놓으며 1990년대 초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들이 1993년에 처음으로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준비를 하면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제품들에 대한 반응을 시험했다. 소비자 평가조사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10점 만점에서 2~6점 정도에 대부분의 응답자가 대답할 정도로 점수가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이런 점수가 나오면 신제품 출시를 포기한다.

‘90년대 중반 한 광고주의 모든 광고물에 대한 사전조사를 기획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이후 그 회사에서 만든 모든 광고는 사전조사에서 일정 점수를 받아야만 집행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그 회사는 광고물 사전조사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더욱 높였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초반에는 필자가 직접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때는 점수도 점수지만 목표 고객층인 조사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중에는 점수만을 따져서 자신들이 그때까지 사전 조사했던 광고물 평가 점수 평균을 넘지 못하면 무조건 광고물을 내보낼 수 없게 규정을 강화했다. 그 이후 그 회사의 광고물들은 너무나도 평범해졌다. 화제가 되는 광고가 없어졌다.

애론의 경영인들은 소비자 대상 조사에서 나온 혹평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제품을 내놓았다. 그 후의 스토리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회사의 매출은 매년 전년 대비 50~70% 이상의 급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애론이 1990년대 말에 같은 형식으로 소비자조사를 하면 10점 만점에 8점 이상이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말 새롭고 좋은 것은 소비자들이 처음에 불편해하고 어색해한다. 당연히 점수가 잘 나올 수가 없다. 소비자의 생각과 행동의 조사를 통해서 쫓기도 해야겠지만 소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사 의뢰자가 그런 1차원적인 형식을 강요한 까닭도 있지만 무조건 의뢰자의 요구를 수용한 조사회사의 책임도 있다. 소비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위 인사이트(Insight)를 발견하는 단초는 결코 소비자가 1차원적으로 응답한 결과를 그대로 모아놓은 데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인간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많은 제품이 소비자들의 혹평 속에 탄생하고 시장에서 출발했다. 오죽하면 애플은 소비자조사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자랑하겠는가? 무조건 조사를 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치열한 연구, 사고, 경험에 기초한 직관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잘한 소비자조사는 더욱 굳건하고 도움이 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요는 애론과 같은 반전의 여지를 과학이라는 미명으로 없애는 조사나 조사에 대한 생각은 버리란 얘기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