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더위와 관련한 대부분 기록이 올해 여름에 갱신될 듯하다. 이전에 무더웠던 여름으로는 1994년과 2018년이 기상청 기록으로나 내 개인의 경험 기억 속에서도 우뚝하다. ‘김일성이 죽었고, 무척 더웠던 해’로 40대 이상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1994년에서 소환의 무게중심이 계속 더위 쪽으로 기우는 양상이다. 2018년에는 길었던 무더위와 열대야의 나날들이 가고, 어느 날 아침 바람이 전날과 다르게 시원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뚜렷하다. 한 친구가 이런 트윗을 날려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더위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리트윗으로 공유했다.
“이럴 수 있으면서, 너 나한테 왜 그랬던 거야.”
덥다 보니 계속 목이 마르고, 물이나 찬 음료를 찾아 마시게 된다. 물배가 차서인지 식사를 안 해도 별 허기를 느끼지 않고, 식욕도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씹을 것을 섭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끼니를 걸렀다며 찼다는 물배는 어디로 사라지고, 새삼스레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그런데 밥을 차리거나 식당을 찾아가면서 다시 목이 마르기 시작한다. 갈증과 허기가 함께 느껴진다.
올해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최고 스타 중 하나로 자리를 굳힌 탁구 종목 신유빈 선수의 경기 중간 중간의 ‘먹방’이 화제였다. 바나나, 주먹밥, 납작복숭아 등의 배를 채우는 먹을거리와 함께 음료에 가까운 에너지젤을 섭취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해당 제품이 품절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유빈 선수 역시 허기와 갈증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목이 마르고(thirsty), 배가 고픈(hungry) 상태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오렌지 주스로 유명한 트로피카나 그룹(Tropicana Brands Group)의 브랜드 중 스무디를 주 품목으로 하는 네이키드(Naked)란 게 있다. 거기서 ‘thirsty’와 ‘hungry’를 합쳐서 ‘thungry’란 신조어를 알리면서, 반전과 함께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캠페인에 나오는 세 가지 상황을 살펴보자.
장례식장에서 젊은 청년이 슬픔에 잠겨 네이키드 음료를 마신다. 슬픈 거야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흐르는 눈물을 미국 달러화 지폐로 닦는다. 그런데 달러화가 스치는 얼굴에 살짝 미소가 비추는 것 같다. 돈 많은 이모가 세상을 떠서 슬프지만, 그에게 유산을 남겨서 동시에 행복한 상태다.
다른 편에서는 어느 아주머니가 슈퍼 같은 곳에서 네이키드 음료를 마시는데, 매장 안의 TV에서 긴급 뉴스로 주택 현관문의 우유 구멍에 몸이 끼어서 소방구조대에 구출되는 20대 청년의 모습이 나온다. 놀라면서도 살짝 미소가 아주머니 얼굴에 스치는 듯하다. 그 청년이 아주머니의 아들이다. 아들이 TV에 나오니 자랑스럽기도 한데, 상황은 너무나 부끄럽다.
기니피그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초등학생 남자 어린이를 그린 영상도 있다. 거의 움직임이 없어서 혹시 죽은 게 아닌가 놀라는데, 몸을 움직여 아무렇지도 않게 먹이를 먹는 기니피그를 보고 어린이가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각각 상황에 따른 감정의 충돌과 적과의 동침식의 공존도 재미있지만, 슬로건에서도 언어유희 형식으로 만드는 중의적 반전의 묘미가 있다. 먼저 첫 줄은 이렇게 외친다.
When Thungry Get Naked.
갈증과 허기를 동시에 느낄 때는 네이키드 음료를 마시라는 뜻이겠다. 한편으로 ‘naked’라는 단어의 일반적 의미에 집중하여 조금 다르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옷을 벗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낱말로 ‘nude’, ‘bare’, ‘naked’가 있다. ‘nude’가 예술적 아름다움과 연계되고, ‘bare’는 신체 일부분의 맨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면, ‘naked’는 자극하는 감성적인 측면이 들어간다. 그래서 이 슬로건에서의 ‘get naked’는 괜히 점잔 빼지 말고 적나라하게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다음 줄에서 자신의 음료 상품이 어떤 것인지 나타낸다.
The Drink You Can Food.
음료(drink)인데 음식이 될 수 있다고, 곧 ‘thungry’한 상태의 해결책이 된다고 주장한다. ‘food’는 보통 명사로 쓰는데, 과감하게 동사로 읽히도록 했다. 사실 영어에서 명사를 동사화하여 쓰는 건, 소수 현학적인 엘리트들의 고질병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get naked’와 붙어서 문법 따위, 곧 다른 사람 눈치 같은 것 보지 말고 갈증과 허기 둘 다 충족시키라는 강력한 권유로 읽힌다. 문법 따위 때로는 무시하는 데서 반전의 강렬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