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최의 생각유람] ② 첫눈의 배반

[피카최의 생각유람] ② 첫눈의 배반

  • 최창원
  • 승인 2018.11.2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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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다! 누군가가 온 사무실을 깨운다. 대개는 오후 두 세 시쯤. 사무실 막내 혼자 분주할 타임이다. 그 소리에 후다닥 창밖으로 다가가 보면, 여린 눈발이 바람에 제멋대로 흩날리고 있다. 그리고 그 눈발은 금방, 흐린 하늘 위로 순백의 화려한 군무를 연출한다. 그때쯤,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연 채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굳이 불금의 오후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어느 새 두근두근 약속의 바다가 된다.

이 그림이 첫눈 오는 풍경의 정석이다. 그러나 올해의 첫눈은 시작부터 달랐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미 세상은 눈 폭탄을 맞은 듯 하얗게 변해있었고, 하늘에선 여전히 눈꽃들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첫눈이 폭설이라니. 그것도 토요일 아침에. 첫눈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정석을 깡그리 무시한, 그야말로 첫눈의 배반이었다.

광고 일을 하다보면, 내가 오랫동안 불변의 진리라고 믿어왔던 게 한 순간에 배반당하는 경우를 겪는다. 아이디어라는 게 원래 기존의 것을 배반하고 앞선 자들의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는 거지만, 그럼에도 나름 신념처럼 지켜가는 것들은 있게 마련이다.

카피란 건, 타겟으로 정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제품을 사랑하게 만드는 말과 글이다. 그러니, 애인에게 연애편지 쓰듯 해라. 여친남친에게 처음 보내는 휴대폰 문자처럼, 관심을 확 끌되 재미있게 써라.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라. 레이아웃은 사람의 시선을 배려해라. 제품엔 절대 스크래치를 내지 마라......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파격’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공격해오는 순간, 이전의 내 신념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생각 자체가 나의 오만이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산다는 게 배반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가르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인간관계도, 그리고 인생 그 자체도, 모두 그런 배반의 눈발이 쏟아지는 낯선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열심히 전해주려 하지만, 학생들은 수면의 바다를 유영하거나 휴대폰 화면에 빠져있다. 글을 쓴다는 것, 책을 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혼신을 쏟아 붓지만 사람들은 기대만큼 봐주지 않는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맞거나, 심지어 100% 내 편이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반의 선물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사진 속, 온몸으로 눈을 맞은 채 세상과 돌아앉은 벤치가 남 같지 않다. 그리고 그 벤치 너머로 드는 궁금증 하나. 배반에 관한 이런 생각마저, 나의 오만은 아닐까? 내가 아닌 남을 탓하며, 그 모든 것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지 않으려는 나의 오만. 어쩌면 평생 50000여 가지의 오만을 머릿속에 담고 가슴속에 품은 채 나는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오만을 이겨낼 또 다른 배반의 눈꽃송이는 있는 걸까? 그래서, 산장의 여인처럼 세상을 등지고 벤치에 홀로 앉아 있지 않아도 될 배반. 앞으로도 배반하고 배반당할 일은 무궁무진할 테니, 열심히 리스트 업 해야겠다. 그럴 듯한 걸 찾으면 알려달라고? 궁금하면 오만 원!

 

최창원 (카피라이터, 겸임교수, 작가, https://www.facebook.com/ccw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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