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클럽/매드타임스는 광고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기고 및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광고산업의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관행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기고시 필명을 사용할 수 있어서, 우려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도 보호받으실 수 있습니다. 적극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광고회사들은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다. TV에서나 보는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고, 이곳저곳을 출장 다니면서 온갖 멋진 곳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리고 필자가 취업할 당시만 해도 그래 보였다.
그런 광고회사에 대한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5여 년 전부터였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디지털 광고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많은 디지털 광고회사가 보다 경쟁력 있는 단가와 디지털 전문성을 내세워 시장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많은 디지털 대행사는 일의 수주를 위해 수수료율까지 건드리기 시작하며 매체 커미션 수수료 체계까지 무너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퍼포먼스 광고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성과 중심의 KPI로 이동하면서 성과 달성의 한계로 인해 수수료 인하에 대한 압박이 클라이언트에게서 오고, 과당 경쟁으로 이제 역마진까지 감수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 실제로 필자는 KPI 미달성이 마치 에이전시의 탓인 듯 당연하게 책임을 묻는 광고주를 경험했는데, 이들은 KPI 달성을 위해 기존 단가 이하로 낮추라는 무리한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했다. 매체 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고 원하는 타깃에 도달하기 위한 매체비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벤치마크가 기존 단가인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윗분들에게 보고하기에는 이런 그림이 필요한가 보다. 이게 말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클라이언트들은 수수료율을 에이전시 선정의 무기로 쓰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유구무언인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제작비는 없다’. ‘제작은 알아서 하고 매체비로 커버하라’ 라는 클라이언트도 있다고. 정말 개탄스러운 상황이다. (※ 이걸 받아들이는 에이전시는 매체비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고 포트폴리오상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가 광고계 전체의 물을 흐려놓게 된다. 그런데 광고계가 너무 각자도생의 분위기라 이 부분을 뭔가 제어하는 것이 현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도 매체비를 규모감 있게 쓰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의 경기 상황에서 클라이언트가 마케팅 광고 비용을 대폭 축소하거나 전면 취소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돈을 못 벌고 적자 나는 에이전시들이 이곳저곳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작비는 없고 이를 매체비로 충당한다 치자. 그런데 클라이언트 상황으로 매체비를 100억에서 10억으로 줄였다. 그러면 광고회사가 벌 수 있는 비용은 1/10 수준으로 줄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금액이 제작에 쓴 비용을 지급하는데 거의 다 쓰일 것이다. 이런 경우 광고회사가 남길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담당자는 ‘나중에 더 큰 건으로 더 벌게 해줄게요’. 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일 뿐 광고회사 처지에서는 상황이 더욱 답답해질 수밖엔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인풋을 더 넣어야 이익이 생기는 거지?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래도 지금까지 한 게 있는데 참고 더 해보자’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에이전시 비즈니스의 가장 큰 문제는 매출 숫자에서 오는 착시현상이다.
이 문제는 클라이언트 대부분이 제작비와 매체비를 합쳐서 제안 요청서 RFP(Request for Proposal)를 내면서 시작한다. ‘이번 저희 입찰의 전체 예산(Total Budget)은 100억입니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전체 예산은 마치 그 전체의 돈이 에이전시의 수익처럼 보이고 이렇게 합친 숫자를 얘기하면서 클라이언트는 ‘나 100억 클라이언트야’라는 어깨의 뽕을 넣게 된다. 하지만 100억이라는 비용에서 에이전시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은 약 10여억 원이 채 안 된다. 물론 10억은 큰돈이다. 오해하지 마라. 요새는 이런 클라이언트도 많지 않다. 나머지 약 90억은 에이전시가 외부 파트너에게 지급해야 하는 AP (Account Payable)이다. 다른 용어로는 PTC (Pass-through Cost) 한국말로 통과하는 비용. 에이전시의 수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스치는 비용이라는 말이다. 마치 나의 월급처럼…
대표적인 PTC 비용은 모델료다. 그냥 통과한다.
그런데 A급 모델과 진행하려면 그 모델이 쓰는 전속 스태프들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를 써야 하는데 그 금액이 마켓 통상적인 수준을 한참이나 웃도는 수준의 금액이다. 이 금액을 클라이언트에게 설득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큰 자괴감에 빠져들곤 했다.
이렇게 제작비, 매체비를 합치면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그 커짐에 따라 클라이언트는 에이전시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멋진 이유가 된다. 아마 ‘내가 100억이나 쓰는데 내가 이걸 요청하는데 안 해?’ 뭐 이런 마인드가 생기나 보다.
아무튼 사실상 클라이언트 예산 총액은 우리의 벌 수 있는 금액의 총액이 아니다. 규모에 속지 말자. 실제로 에이전시가 벌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그걸 파악해야 한다. 순매출로, 그리고 영업이익이 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 관점에서 이 클라이언트가 우리 인력 투입 대비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일하고도 적자가 나는 일이 발생하고 우리 모두 어리둥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최근에 모 광고회사 대표님은 수백억대 광고주를 드롭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매출은 수백억 원인데 실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30억 적자라고. 이런 경우는 수백억 광고주가 아니라 마이너스 30억 광고주이다.
실제로 숫자를 민감하게 보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고 매체비로 다 커버되겠지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차라리 매체에 지급하는 비용과 제작비용 (모델료 포함)을 제외하고 에이전시 Fee를 따로 계약하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지금은 광고회사의 과금 체계에 변화를 주어야 광고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다 집행하고 청구하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그동안 에이전시는 어떻게 운영하라고? 알아서 운영하라는 건가?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다.
※ 12퍼센트(필명) : 현재 전략적인 크리에이티브로 평가받는 광고회사의 핵심 리더로 국내외 광고 어워드에서 다수 수상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