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공동저작자. 믿어도 되나요?

[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공동저작자. 믿어도 되나요?

  • 윤혜진
  • 승인 2018.11.21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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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안의 네딸들과 신의 물방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제가 읽은 만화책 중에서 기억해 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최근에 읽은 것입니다. 서정적인 스토리와 화려한 그림들은 지금 봐도 신일숙 작가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신의 물방울은 아기 타다시가 스토리를 쓰고 오키모토 슈가 그린 공동저작물입니다.

만화는 스토리와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므로, 이 두 가지가 다른 사람에 의해 창작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내용은 스토리작가가, 그림은 만화가가 담당하고,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도 여러 작가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만화나 소설이 영화화되어 저작권자가 막대한 저작권료를 받는 경우도 있고요. 창작에 기여했다면 모두가 공동저작권자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마땅한데, 현실에서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무명작가 A 는 유명만화가 B의 의뢰로 웹툰 스토리를 제공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받았습니다. 무명작가 A 는 인물의 위치, 배경, 지문 등을 배치하고, 대사나 효과음, 간단한 데생을 통하여 콘티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였고, B 로부터 구체적인 스토리나 전개방향에 관한 지시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스토리 수정요구를 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B 는 콘티 형식의 스토리에 기초하여 다양하게 장면을 구분, 배치한 후, 각 장면에 적합하게 등장인물, 주변 배경 등을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 만화를 완성하였습니다. B 는 완성된 만화의 제호를 변경하고, 무명작가 A 의 성명 등을 표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명의로 만화를 출간하였습니다. 이에 무명작가 A 는 자신은 공동저작자이고, 자신의 동의 없이 제호를 변경한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법원은, 만화는 스토리를 쓰는 작업과, 이를 연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작업 모두가 필요하며, 무명작가 A 가 만화작품의 완성이라는 공동창작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점, 만화스토리는 B 에게만 제공된 점 등을 인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만화는 B 가 무명작가 A 의 스토리를 변형, 각색 등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이라기보다, 무명작가 A 의 만화스토리와 B 의 독자적인 그림이 결합된 공동저작물입니다.

이 사건은 어떨까요? 입체적인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던 구름빵 동화책입니다. 구름빵 동화책은 3차원 입체 세트와 2차원적 평면 캐릭터가 결합해서 비현실적이고 독특한 배경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화에는 36장의 사진이 삽입되었는데, 출판사에서 사진촬영을 담당한 직원을 공동저작권자인 것처럼 표기하였습니다. 작가가 사진저작물은 작가의 단독저작물이므로 출판사 직원 표기 부분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법원은, 삽입된 36장의 사진은 사진 작업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실제 담당한 작가가 저작자이지, 그 과정 중 촬영 작업에서 사진촬영을 담당한 것에 불과한 출판사 직원은 창작에 대한 재량권 없이 작업에 보조자로 참여한 것이므로 공동저작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작가가 책 출간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작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저작권자로 인정해 주면, 작가는 저작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공동저작권자 여부는 다수가 창작에 참여한 경우, 누가 저작권자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나, 창작물을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 사이에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무명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출간하면서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출판사가 제3자를 공동저작권자로 내세우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의 개발자와 발주처의 관계에서, 법원은 의례적으로 고액을 지급하였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창작에 직접 관여한 개발자가 저작권자이며, 아이디어를 제공했더라도 발주처는 공동저작권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공동저작물인가 여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단순합니다. 법원은 2인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할 의지를 갖고 단일창작물을 완성했고, 각자 기여한 부분을 분리하여 이용할 수 없는 경우를 공동저작물로 인정하고 있으며, 창작을 보조한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창작을 주도했다면 공동저작권자로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듯, 힘과 권력에 의하여 엉뚱한 자가 저작권자로 둔갑하는데, 현실은 진정한 저작권자는 소송을 꺼리고, 승소해도 소액의 손해배상액만이 인정될 뿐입니다. 창작물의 종류나 성질, 창작의 기여 정도, 창작자의 의사로 공동저작물 여부가 달라질 수 있지만, 권리 없는 자가 저작권자로 둔갑하거나 진정한 저작권자가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윤혜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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