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회담과 10개의 PR 관점

하노이 북미회담과 10개의 PR 관점

  • 김주호
  • 승인 2019.03.04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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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8일 하노이 북미회담이 성과없이 끝났습니다. 회사에서 일 때문에 이틀 동안 생방송을 보지 못하다가 어제 점심 지나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회담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해서 잠깐 TV를 보았더니 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더군요.

오늘 아침 조간을 보니 헤드라인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노 딜’ 하노이…멀고 험한 비핵화 여정 (한국일보)

하노이 核 담판 결렬… 美 “김정은 준비 안됐다” (매일경제)

‘노딜’로 끝난 하노이 핵담판 (중앙일보)

김정은 “모든 제재 풀라”… 결국 판이 깨졌다 (조선일보)

열매 못 맺은 2차 북미정상회담… 냉각기 거쳐야 할 듯 (한겨레)

회담 결렬을 보도한 조선일보와 코리아타임즈 (2019.3.1)
회담 결렬을 보도한 조선일보와 코리아타임즈 (2019.3.1)

어제 저녁 방송사 리포트를 지켜보니 기자들도 뭔가 허탈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는 것이 언론사들의 보도였고 오찬과 서명식 일정까지 공개된 상황이었기에 오찬과 서명식의 취소와 회담 결렬 선언은 또다른 측면에서 세계적인 뉴스였습니다.

PR의 관점에서 이번 회담을 살펴봅니다.

1. 김정은의 66시간 기차여행

김정은 위원장은 비행기로 금방 올 수 있는 베트남에 기차로 66시간을 달렸습니다. 과거 김정일이 모스크바를 20여일 넘게 걸려 간 적도 있다고 하지만, 현대의 교통망 등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PR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세계의 언론이 3일 가까이 김정은의 일정을 취재하고 베트남 회의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뉴스의 중심에 선다고 하는 측면에서, 그리고 중국과의 우호관계 과시, 낡은 전용기 이용에 대한 부담을 더는 측면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지요. 마치 정주영 회장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트럭 행렬에 소떼를 태우고 가서, 이를 CNN이 중계했던 장면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2. 정상 숙소에 프레스센터?

경호 문제로 숙소나 회담장 등이 일찍 공개되지 않고 기자들의 추측에 의해 기사가 쓰입니다. 보통 정상 숙소와 프레스센터가 같이 있는 경우는 없지만, 하루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묶는 숙소에 미국 기자들의 프레스센터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은 뭔가 북미간의 사전 조율이 원활치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아침에 만난 김정은 위원장이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는 듯한 모습, 트럼프는 서두를 것이 없다고 한 말에서 뭔가 간극을 느낀 사람도 많았습니다. 볼턴의 갑작스러운 회담 참석과 4:4가 아닌 4:3의 어색한 회담도 뭔가 어설픈 결말을 예고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서방 기자와 만나는 김정은 위원장

회담 시작 전에 언론에 잠깐 공개되는 회의 장면은 서방 언론엔 익숙한 모습입니다. 그런 환경이 노출된 김정은 위원장은 백악관 출입 기자의 질문에 ‘비핵화를 안 할 것면 여기 오지 않았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중국 방문 시 사전 일정 비공개 등 공산국가의 방식 위주로 해오다가 판문점이나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방문하면서 차츰 서양식 보도 태도나 의전에 조금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4. 코헨의 의회 증언을 7시간 중계하는 미국 방송

북미회담 당일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집사였던 코헨의 의회 증언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가끔씩 하노이를 연결하는 식으로 뉴스 비중이 코헨 청문회에 쏠렸습니다. 트럼프는 기자회견에서도 청문회를 중요한 정상회담 기간에 잡은 것을 비난했고 스스로 청문회를 TV를 통해 지켜봐왔음도 밝혔습니다. 미국 내 반 트럼프 여론과 부실한 북핵 협상에 대한 후폭풍 우려로 트럼프가 협상을 결렬 시켰다는 일부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자 미국 언론은 다시 하노이로 카메라를 돌렸습니다.

5. 트럼프의 기자회견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온전히 생방송으로 지켜봤는데, 전형적인 미국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기자들은 공격적이고 트럼프는 할 말을 다하고 폼페이오에게 마이크를 가끔 넘기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연설을 TV 생방송을 통해 처음 본 것 같은데 대답이 막힘이 없더군요. 트럼프는 그 중요한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기자회견을 하면서 인도-파키스탄 분쟁이나 베네수엘라 이슈를 먼저 이야기함으로써 북핵 결렬에 대해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려 했습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존중과 회담 과정의 진전 등을 내세우며 상대방 비난을 피하고 미래를 기약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쉬울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트럼프는 큰 틀에서 보면 비핵화 범위와 제재 완화 범위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특히 북한의 전면적 제재 완화가 걸림돌이 된 것으로 밝혔지요. 주제와 거리가 먼 코헨 질문에는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6. 백악관의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오찬과 서명식이 취소되고 기자들이 우왕좌왕 추측 보도를 쏟아내고 있을 시각 백악관은 트위터를 통해 회담이 성과없이 끝났음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또 백악관의 샌더스 대변인은 인스타그램에 김정은과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게 아니라 웃으면서 헤어지는 정상의 사진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미래를 기약한다는 의미를 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두가지 메시지는 세계 언론의 핵심 뉴스였습니다. 트럼프를 포함해 백악관, 폼페이오, 샌더스 등 미국의 핵심인물뿐 아니라 백악관 출입 기자들의 트위터는 세계 언론의 핵심 뉴스 취재원이 되었습니다.

백악관 샌더스 대변인 인스타그램의 북미 정상 작별 사진
백악관 샌더스 대변인 인스타그램의 북미 정상 작별 사진

7. 청와대의 변화된 메시지

청와대도 회담에 대한 스탠스를 잡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언론들은 청와대, 중국, 일본 정부의 반응을 들어보고 싶어 했습니다. 특히 중재 노력을 했던 청와대 입장에서는 회담 중간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는데, 바로 합의 결렬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난감해졌습니다. 청와대는 회담의 결렬보다는 미래 모멘텀 마련에 방점을 두고 논평을 했습니다. 긍정적 메시지를 남겨두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특히 다음날 삼일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신한반도 구상이 발표되었는데 아무래도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루 사이 기념사를 많이 수정했겠지요? 결국 기념사에 남북경협이나 남북 교류 등에 대한 발표가 들어가긴 했지만, 북미회담이 타결되었을 때와 국민들의 공감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8. 에어포스 원의 전화

기자들 입장에서는 이해 당사국인 한국의 입장을 취재하고 싶어합니다. 트럼프가 베트남을 떠나며 전용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한 것은 이해 당사국들이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고 앞으로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를 바라보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문 대통령은 조만간 트럼프와 만나자고 제안했습니다.

9. 북한의 심야 기자회견

북한은 회담이 끝나고 밤12시가 되기까지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보다는 김정은이 더 충격이 컸을 것이라는 보도가 많습니다. 12시가 지나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미국이 북한의 전면적 제재 완화 요구로 협상이 결렬된 것처럼 발표한 데 대해 이를 반박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특히 최선희는 일문일답까지 해가며 기자들을 대응했고 김정은 위원장의 심정까지 추측해 밝히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죠. 그러나 북한 역시 미국을 비난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3월1일 아침 북한의 관영매체인 중앙조선통신도 양국 정상이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 년간 지속된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노동신문 역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가 또다시 상봉하고 회담했다’라는 중립적인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결렬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언론은 김정은이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10. 베트남 일정 취소?

언론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베트남 잔여 일정을 취소할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일부 일정을 단축하는 선에서 예정된 베트남 국빈 방문 일정을 소화했죠. 이는 회담의 성과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외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평상심을 유지하고 미래를 기약하자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닐까요? 한 언론에서는 담담하게 행사를 진했다고 밝혔는데, ‘두문불출’이라는 표현과는 대조되는 정상적으로 공식 방문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이 TV에 보이더군요.

 


김주호 KPR 대표 / 블로그 김주호의 PR의 힘 (http://sugas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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