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그림자는 알고 있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그림자는 알고 있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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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잭 칼슨(Jack Carlson)이라는 미국의 10대 유튜버가 2021년 6월에 레고 4,000피스(piece)로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의 A380 모형을 비행기 안의 모든 시설과 다양한 인종과 성별·연령대의 승객들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Bigplane’이란 SNS ID에 어울리는 그런 작품을 위해 무려 10개월 동안 매달렸다고 한다. 난데없이(?) 전 세계적인 홍보 효과를 누린 에미레이트 항공에서는 그에게 두바이까지의 왕복 일등석 항공권을 선물로 제공했다.

레고 마니아를 자처하며 자신만의 정교한 작품을 만드는 친구들이 있고, 레고에서도 아예 스타워즈 시리즈 등 모형 건축물에 버금가는 상품을 쇼윈도에 멋지게 전시한다. 그런데 레고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이 거의 공통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레고 상품들이 세밀할수록 아이들이 떼를 쓰며 사달라고 하지만, 가지고 노는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중도에 포기한다.

둘째, 한 조각만 잃어버려도 완성품을 만들 수 없어서 역시나 포기한다.

셋째, 설명서대로 해야 하니 재미가 없다.

복잡한 레고 스타워즈 우주선을 보고 열광했던 순간은 쉬이 지나가고, 어느새 평범한 사각형의 레고 조각들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유심히 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조각 하나를 ‘부릉’ 소리를 내며 자동차라고 하고, 조각 몇 개가 모이면 집이라며 또 하나의 무대로 소꿉놀이 같은 것을 한다. 레고에서 인쇄광고로 집행한 그림자 혹은 상상력 시리즈가 있다. 두세 조각 레고를 모아 아이들은 탱크, 배, 닭, 비행기를 만들어 논다. 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여실히 반영했으며, 상상력을 키워준다는 교육적인 효과까지 레고가 가지고 있다는 걸 부모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그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 레고 조각만 보는 어른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림자는 알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만화 잡지로 공교롭게도 이곳과도 같은 이름의 <MAD>에서는 꽤 오랫동안 ‘THE SHADOW KNOWS(그림자는 알고 있다)’라는 연재가 있었다. ‘사람들이 속에는 어떤 악마를 숨기고 있을지 알아?’라는 부제처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속으로 숨기고 있는 진짜 마음을 그림자로 표현했다.

원래 ‘그림자’라고 하면 어두운 느낌이 강하다. ‘빛과 그림자’라는 패티 김이 불러 잘 알려진 노래가 있다. 가사 중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직설적으로 비교한 것처럼, 그림자는 빛과 대비되는 어두움의 상징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두우니까 ‘보이지 않는’, ‘정식이 아닌’ 것들을 가리키며 쓰이기도 한다. ‘그림자 내각’이라고 하면 정식 내각을 위하여 미리 구성한 조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법제상의 조직을 제치고 실세로 활동하는 내각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림자는 빛만 있다면 항상 사람에게 붙어 있다. 그래서 항상 붙어 있는 이들에게 그림자 비유를 쓰기도 한다. ‘그림자 수비’, ‘그림자 내조’ 등의 표현이 그런 예이다. 한편으로 <MAD>의 연재물에서 보듯, 숨기고 있는 진짜 마음을 그림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기서 살짝만 비틀면 실제와는 다르지만,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그림자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레고의 그림자 시리즈처럼 어두움의 상징을 밝은 상상의 산물로 만드는 반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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