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소리가 없기에 더욱 크게 들리는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소리가 없기에 더욱 크게 들리는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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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주로 광고주 기업에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 관련 강연 후 청중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광고 시안들을 가지고 들어온다. 광고 회사 사람들이야 다 좋은 광고안들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선정해야 하느냐? 대체 어떤 광고가 좋은 광고인가?”

절대적인 기준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처한 상황이나, 대상과 목표 등에 따라서 고르는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질문을 했을까 싶었다. 대략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뭉뚱그려 얘기하면 말이 없는, 카피가 적을수록 좋은 광고입니다.”

거기에 부연 설명을 약간 붙였다.

“브랜드 파워가 강할수록 광고에서 말이 적습니다. 자신이 없으니까 말이 많아지는 겁니다.”

처음부터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하고 카피가 빼곡한 광고안을 가지고 가는 경우는 없다. 광고주와 회의하면 할수록 이상한 말과 장면이 들어가면서 광고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상을 일본에서 만들어 화제가 된 적 있다. 어느 대그룹의 임원들에게 소속 광고 회사 CD가 보여주기도 했고, 그를 보고 최고위 인사가 광고 내용에 대해서 이런저런 간섭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광고회사나 광고주나 결재 단계를 하나씩 오를 때마다 한 줄씩 카피가 늘어서 결국 장황하고 말 많은 광고가 된다는 얘기했는데, 아직도 이런 관행이 싹 없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광고주 시절에 홍보영화, 곧 PR film의 책임을 맡았던 적이 있다. 신판 제작을 하기 전에, 3년 전 만들었던 홍보영화의 수정판 작업에 들어갔다. 3년 동안에 새롭게 만든 제품들과 성과 화면을 끼워 넣고, 대본에도 반영하여 녹음을 다시 하는 일이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수정판에 들어갈 제품과 개발 기술을 선정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 제품 본부에서 압력이 오고, 결재라인의 상사들이 생각하는 꼭 들어가야 하는 항목들이 계속 나왔다. 게다가 항목마다 설명이 많이 붙었다. 제품이나 기술 명칭만 열거하는 건 외부인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니,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설명까지 첨가가 되고 보니, 홍보영화의 내레이션이 한없이 길어졌다. 영어로 번역한 대본은 한국어보다도 거의 1.5배로 길어져서 화면과 맞추는 건 고사하고 헉헉대며 읽기만 해도 시간 내 소화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담당자의 독단으로 과감하게 영어 대본의 상당 부분을 삭제하고 축약시켰다. 녹음을 마친 미국인 친구는 100미터 달리기하듯 5천 미터를 뛴 듯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는 말했다. 원래의 번역본을 과감하게 상당 부분을 잘라냈다고 했으나, 그 말에는 별 대꾸를 하지 않고 말했다.

“꼭 이렇게 말로 해야만 하나요. 사람들이 잘 알 텐데 굳이 이렇게 말로 해야 하나요? 어떤 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걸.”

사람들이 워낙 잘 알고 있는 걸, 줄기차게 다시 외치는 경우가 있다. ‘일관성’에 ‘역사적 유산 활용’ 혹은 ‘오마주’ 등의 단어를 가져다 붙이며 정당화하기도 한다. ‘리믹스 remix’, ’리메이크 remake’ 등의 용어를 쓰기도 한다. 웬만큼 새로운 접근을 하지 않고, 까딱 잘못하면 ‘또 그 타령’, ‘재활용’, ‘우려먹는다’ 식의 거친 반응을 접하기 쉽다. 부라보콘 광고가 새로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 유명한 한국 광고사의 대표적인 CM송 5곡을 뽑으면 분명 상위에 랭크될 그 노래를 어떻게 활용했을지 궁금했다. 노래가 주인공이기는 했다. 그런데 소리가 없었다. 광고의 제목대로 ‘가장 조용한 CM송’이 되었다. 최고의 가수들이 소리 없이 부라보콘의 CM송을 불렀다. 그 울림은 이전의 CM송 못지않게 컸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과거의 큰 유산의 그림자를 극복하며, 제품과 브랜드에 더욱 큰 울림을 만드는 반전을 만들었다. 이후 그 가수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부를 때는 여운과 같았다. 굳이 다른 말들 하지 않은 것만도 칭찬하고 싶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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