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지하인데 지하 같지 않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지하인데 지하 같지 않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5.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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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바다를 가른 홍해의 기적이냐?”

이화여자대학교가 2008년에 완공하여 선보인 이화캠퍼스 복합단지, 곧 ECC(Ewha Campus Complex)를 처음 보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었다. 이화여대 교정의 북쪽에서 정문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갑자기 땅이 꺼진 계곡처럼 나타난 지대를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이집트 병사들에게 쫓겨 홍해 바닷가에 이르렀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바다가 갈라져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던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화여자대학교 ECC (ⓒ 이화여대 홈페이지)

“지하 같지 않은 지하를 만들겠다.”

2004년 이화여자대학교는 강의실, 주차 공간, 피트니스센터와 매점 등의 학교 시설이 부족하여 대운동장 부지에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꽤 나 화제가 되었던 국제건축공모전을 통하여 비교적 젊은 편으로 과감한 건축으로 이름을 날렸던 프랑스의 도미니끄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설계가 선정되었다. 이화여대에서 이런 혁신적인 설계를 선택하여 깜짝 놀랐다는 말에 학교 관계자는 자신들도 처음 생각했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안이 선정되어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원래의 생각들이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을 거치며 달라졌다고 한다. 그 이변을 일으킨 핵심이 바로 ‘지하 같지 않은 지하’라는 도미니끄 페로의 콘셉트였다.

“열린 이화를 만들겠다.”

원래 운동장이 있던 곳의 중간을 파서 널찍한 통로를 만들고 그 양쪽으로 잔디밭 정원을 꾸민 공간 아래로 유리창을 벽으로 삼은 6층 공간을 만들었다. 자연 채광이 되면서 페로의 콘셉트가 실현되었다. 그 건물에는 강의실, 도서관, 갤러리, 서점, 피트니스센터 등이 들어섰다. ECC는 이화여대의 교직원과 학생들 이외의 속칭 외부인들에게도 공개되는 공간임을 천명했다. 이화여대를 지칭할 때 자연스럽게, 이화여대 사람들은 때로는 자긍심을 가지고 ‘금남(禁男)의 공간’이라는 표현을 쓰던 시대가 있었다. 실제 남자들은 교문에서 입국심사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캠퍼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이화하는 공간이 바닷물이 갈라지듯 외부에도 열렸다. 지하인데 지하 같지 않은, 부자연스럽게 땅을 팠는데, 그를 자연으로 덮은 ECC에 어울리는 변화였다.

ⓒ디올 트위터
ⓒ디올 트위터

“최고 VIP는 총장도 디올 CEO도 아니었다.”

올해 4월 30일 ECC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디올(Dior)의 2022 가을 패션쇼가 ECC의 통로를 런웨이로 하여 펼쳐졌다. 제한된 초청 인사와 소수의 학교 관계자만이 참관할 수 있는 행사였는데, 이화여대의 중요 보직을 맡은 분을 만나서 그 뒷얘기를 들었다. 이화여대 총장과 디올의 CEO가 자리를 잡고 앉았으나, 패션쇼가 시작되지 않았다. 주요 인사가 도착하지 않아서 그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마침내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하늘거리며 한 여성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걸어 들어왔다. 블랙핑크의 지수였다고 한다. 지수의 위력을 실감했는데, 귀가해서 중학생인 그의 딸에게 패션쇼 얘기를 했단다. 딸은 지수가 왔는지를 바로 물었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말에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며 ‘최고 VIP’ 운운했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 디올 유튜브)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 디올 유튜브)

“과잠을 입은 금발녀”

런웨이 패션쇼의 하이라이트 무대는 대표 디자이너의 몫이다. 디올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유명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주인공인데, 그가 이화여대 과잠을 입고 나타났다. 2학년만 되어도 신입생들이나 입는 거라며 촌스러운 패션이라고 하는 과잠을 글로벌 패션의 최정점에 있는 인사가 패션쇼에 입고 나타났다. 페미니스트 치우리가 이화여대라는 세계 최고의 여자대학교의 열린 공간에 맞춘 멋진 반전 연출이었다. 그를 ‘금발녀’라고 부른 기사들이 꽤 나왔다. ‘금발’, 곧 서구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을 떨치지 못한 이들의 단어였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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