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이태리 혈통과 미국의 마음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이태리 혈통과 미국의 마음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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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얼핏 봐서는 빨간색이 튀기는 하지만, 스포츠카 카테고리에서는 그리 튈 것도 없는 자동차 광고였다. 2010년에 미국 출장길에 들른 브랜드 업체의 테이블에 놓여 있던 잡지를 슬슬 넘겨 보다가 만났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자동차 회사가 아니었다. 기업명이 SV Motor Company라고 하는 데 매우 생소했다. 그 바로 전 해부터 자동차 산업 쪽 일을 한 신참이니 그렇다 생각하여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자동차 업계에 오래 나름 오래 있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검색하며 보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수공업 자동차 제작소에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 이태리풍의 스포츠카를 디자인하고, 때로는 제작하기도 하고, 수리하거나 튜닝하는 그런 회사인 것 같았다. 어쨌든 ‘이태리’가 브랜드의 아주 중요한 DNA였다. 내가 본 건 그 회사에서 대중 상대로 판매한 아마도 유일한 모델인 것 같은 SV9 Competizione 이란 모델의 광고인데, 이름에서도 이태리 혈통이란 걸 확실하게 내세우고 있다. 광고의 카피 혹은 슬로건 같은 데서는 한술 더 떴다.

"Italian Blood. American Heart"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푸하' 웃음을 터뜨렸다. 방문했던 업체의 미국인 친구가 의아해하면서 이유를 물어 이렇게 대답했다.

"Italians have too much blood while Americans have too little heart (이태리인들은 피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미국인들에게 따뜻한 마음이란 건 찾기 힘들잖아)."

'Blood'와 'Heart' 모두 원래부터 여러 가지 뜻을 지닌 단어들이다. 이 광고에서 'Blood'는 이태리가 원산지라는 혈통뿐만 아니라, 핏빛과 같은 강렬함 등을 내포하고 있다. 기질을 얘기할 때도 ‘blood’를 쓴다. 흥분도 잘하지만,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헌신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점들을 표현하려고 했음이 틀림없다 'Heart'는 아무래도 미국 시장이 주력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마음, 심장을 뛰게 하는 무엇이 있음을 얘기하려고 한 것 같다. 인간다운 측면, 미국인과 함께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가져다 썼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 이태리 친구들은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그러면서 혈통을 따지고, 미국 애들에게 따뜻함 같은 것은 별로 없으니 마음에 호소하는 것도 그리 잘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얘기였다.

이 광고를 보면서 예전 제일기획 미주법인에 있던 이태리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자 친구가 생각났다. 결혼을 앞둔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인들 성향이 유럽계에서는 이태리와 아일랜드인 곧 아이리시(Irish)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 성격 급하고, 욱하고 일어나길 잘하고, 술 많이 마시면서 대단히 감성적인 점들을 예로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는 그 친구가 한동안 크게 웃음만 터뜨리더니 말했다.

"나는 부모님이 이태리와 한국인인데, 결혼할 사람은 아이리시야! 좋은 거야, 나쁜 거야?"

‘나도 너희 부부 미래가 궁금해지는데’라고 응답한 그 대화 얼마 후 결혼한 그 친구는 오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아이리시 남편과 ‘blood’와 ‘heart’가 모두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의 광고에 쓰인 "Italian Blood. American Heart"는 ‘이태리의 혈통, 미국의 마음’이라고 번역하는 게 내 딴에는 최선인 것 같다. 실제 이태리 출신 디자이너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소재지인 샌프란시스코의 미국 서부풍을 물씬 풍겼던 SV Motor Company는 이 모델 이후로 별 정보를 찾을 수 없다. Competizione 스포츠카 자체는 샌프란시스코 부둣가의 근사한 식당이나 술집 앞에서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리시 남자와 결혼했던 원래 샌프란시스코 주변에 살았던 옛 동료가 그 자동차 앞에 있으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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