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거 사진의 비용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거 사진의 비용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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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와 존슨의 1912년 대통령 선거 포스터(ⓒ Heritage Auctions)
루스벨트와 존슨의 1912년 대통령 선거 포스터(ⓒ Heritage Auctions)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인물 보고 찍었다.”

이번 2022년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하고 온 친구에게 후보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여기서 ‘인물’은 ‘외모’를 뜻한다. 포스터나 선거공보물에 있는 인물 사진을 보고 결정했다는 말이다. 제대로 후보의 공약이나 이력을 보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다. 특히 광역자치단체부터 구(區)나 군(郡) 의원에 비례까지 4명 이상을 뽑아야 하는 지방선거의 경우 맘먹고 공부하지 않으면 후보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투표하기를 기대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물론 그래도 성실한 유권자로서의 노력을 하는 게 원칙이겠지만 말이다.

사람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선거 포스터고 사진 속 인물 사진이고 해서 사진의 중요성이 커지는 게 현실이다. 사진 찍기를 직업으로 하는 친구의 말로 선거를 앞두고 매우 바빠지기는 한단다. 그런데 돈을 벌지는 못한다고 한다. 대금을 바로 지급하지 않고, 선거 끝나고 준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선거 결과가 나오고 낙선한 사람에게 가서 사진값을 내라고 하기는 난감하다. 당선된 이들 중 상당수는 선거를 위한 사진값을 ‘앞으로 일거리를 주겠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기고 하니, 이래저래 재능기부를 하는 셈이란다. 물론 한 친구의 경험에 국한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판의 부정적인 일면을 담은 이야기는 틀림없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자본이 정치의 시녀 비슷한 노릇을 하며, 제대로 둘의 관계가 정립되지 못했던 까닭 같기도 하다.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좌), 'Negotiation Genius: How to Overcome Obstacles and Achieve Brilliant Results'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좌), 'Negotiation Genius: How to Overcome Obstacles and Achieve Brilliant Results'

자본주의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미국에서는 100년도 전에 벌써 선거 공보에 쓰는 사진의 저작권을 따졌나 보다.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정인호 지음, 경향미디어 펴냄, 2019) 는 한국과 미국의 사례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책이다. 협상을 넓게 보아서 '소통' 곧 커뮤니케이션으로 넓혀서 적용할 원칙이나 생각해 볼 사례들도 많다. 선거 사진과 관련한 110년 전의 미국의 사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실 숫자나 사실관계의 오류들 때문에 먼저 주목하게 되었는데, 위기에서 반전을 만들어낸 사례로도 쓸 만하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었던 대통령으로 꼽히는 ‘테디 베어(Teddy bear)’의 주인공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대통령에 재임한 이후, 1912년에 제3당을 창당하며 다시 선거에 나섰을 때의 일화이다. 루스벨트의 사진과 연설문을 실은 홍보 팸플릿 300만 부를 제작하여 배포하려던 차에, 저작권자인 사진작가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작가가 법에 따라 저작권료를 요청하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걸 당시 루스벨트의 선거본부장이 사진작가와 재치 있게 소통하여 해결했다고 한다.

저작권자에게 문의하니 사진 1장당 1달러를 요구하였다. 당시의 300만 달러는 오늘날 약 6,5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대부분의 사람은 저작권자와 사진 사용료를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 93쪽)

위 내용을 보면 저작권자인 사진작가에게 먼저 문의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사진작가는 루스벨트의 사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협상에 관한 미국 책인 <Negotiation Genius: How to Overcome Obstacles and Achieve Brilliant Results>에 나온 내용을 <갑을 이기는 을의 협상법> 저자가 거의 옮기다시피 했는데, 거기에는 '저작권법에 의하면 장당 1달러까지 달라고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번역 와중에 뒤의 내용과 어긋나서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다. 선거본부장은 사진작가에게 아래와 같은 문구를 전달했단다.

​"이번 선거 홍보 팸플릿 300만 부에 귀하가 찍은 사진을 배포할 경우 전국적으로 귀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귀하의 사진을 실어주는 대가로 얼마의 금액을 낼 용의가 있는지 즉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저작권자에게 물어보지는 않은 것이다. 어쨌든 사진작가는 즉시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제가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250만 달러만 지불하겠습니다." (93~94쪽)

위 문장에서 '250만 달러'는 번역의 실수이기보다는 순전히 오타라고 생각하고 싶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금액이다. 다른 책들에는, 그리고 일화가 실린 위에 언급한 영어 책에도, 'Appreciated opportunity, but can only afford $250.'라고, 정확하게 ‘250달러’라고 되어 있다. 금액과 같은 숫자는 교정을 보면서 좀 더 신경을 써서 확인해야 한다.

어쨌든 시어도어 루스벨트 진영은 수백만 달러가 들어갈 수도 있는데 오히려 상대방을 배려하는 식으로 생색을 내는 상황으로 바꾸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시각의 반전에서 얻은 결과이다. 나쁘게 보면 사진작가의 저작권에 관한 무지를 악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1912년에도 루스벨트의 대중적 인기는 다른 후보들보다 월등했지만, 그는 제3당의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낙선했다. 착하게 살자.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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