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려라. 그러면 얻을지니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려라. 그러면 얻을지니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6.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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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Just think about it deeply, then forget it… and an idea will jump up in your face.”

“심도 있게 그것만 생각해. 그리고 나서 그것에 대해 잊어버리는 거야···그러면 아이디어가 팍 떠오를 거야.”

미국 광고계의 낭만 시대라고 하는 1960년대 뉴욕의 광고 회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d Men>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돈 드레이퍼(Don Draper)가 비서로 들어왔다가 일약 카피라이터가 된 페기 올슨(Peggy Olson)에게 한 대사이다. 앞부분은 ‘더 깊게, 근본까지 파고 들어가라”, “끌로 파라”라는 한국 광고계에서도 흔히 들었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게 파고들었어도 “이게 최선인가?”, “혼(魂)을 실었는가?"라는 상사의 질책성 질문에 다시 끝이 없는 고민으로 접어들었다. “창의성에도 농업적 근면성이 필요하다”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을 깨끗이 잊으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이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앨런 튜링(Alan Turing)의 이야기를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라는 영화가 있다.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애니그마를 풀기 위하여 영국은 튜링을 포함한 수학자, 언어학자 등을 소집한다. 튜링의 동료들은 애니그마의 암호들과 그에 대응하는 단어들을 찾기 위하여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없는 작업에 매달린다. 기계로 만드는 암호를 풀기 위해서는 기계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암호 풀이 기계 제작에 열중하는 튜링에게 팀장과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폭력을 휘두르고 배척하려고 한다. 잘못된 방향을 택하여 가면서도, 그 길에서 열심히 뛰지 않는다고 혼내는 셈이다.

“Sometimes it is the people who no one imagines anything of who do the things that no one can imagine”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튜링을 이해하고 그와 아주 짧은 결혼 생활까지 하는 죠앤 클라크(Joan Clarke)를 튜링이 달래며 한 말이다. 백지상태로 자신이 축적했던 모든 것을 버렸을 때 거기서 아무도 감히 깨닫지 못했던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튜링은 그렇게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큰 고난을 겪었지만 말이다. 이후 성 정체성으로 인해 당했던 수모와 비극은 차치하고 말이다.

우리가 광고를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 중의 하나가 아마 '차별화'일 것이다. 조앤 클라크에게 얘기했던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이 바로 차별화의 조건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차별화가 쓰이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결과만의 눈에 보이는, 최종적인 밖으로 드러난 차별화만을 얘기하고 있다. 틀에 박힌 똑같은 과정과 생각의 흐름 속에서 최종 결과물만이 다르기를 바랄 수 있을까? 진정한 차별화란 과정에서 나온다.

선승(禪僧)으로 유명했던 어느 스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참선을 하면서 제일 먼저 자신 앞에 놓인 찻잔을 마음속에 담으라고 한단다. 그것이 마음에 담기면, 그다음에 그것을 마음에서 지우라고 한단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그 찻잔을 다시 자신의 앞에 놓는 절차를 밟는다. 그런 과정을 밟고 나면 눈앞의 찻잔 자체가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바둑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일단 모든 정석을 암기해라. 그리고 외운 것들 싹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해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얘기하는 제품의 특성이나 장점, 그전에 마케팅원론이나 광고원론 등에서 배운 제품의 분석 방법, 소비자 조사 방법 등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으로 꼭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 정도는 제대로 된 경쟁자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사람을 끌 만한 얘기가 나올 수 없다.

이런 비슷한 과정을 자신이 광고할 물품에 대해서 거치고 광고를 한다면 좀 더 차별화된 그런 광고물이 나오지 않을까? 최종 결과물이 외관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한다. 왜냐하면 그 광고물이 나오기까지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탐구와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이 광고회사뿐만 아니라 광고주 측면에서도 공유된 경험으로 제품 자체를 바꾸어 놓고, 회사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연결되어 어두운 숲속에 스며드는 빛처럼 결국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 반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I’d never recommend imitation as a strategy. You’ll be second, which is very far from first.”

“상대를 쫓아 하는 걸 전략이라고 해서는 2등에 그칠 거야. 것도 아주 멀리 뒤처진.”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버리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란 가르침을 받은 <Mad Men>의 페기 올슨이 당당한 카피라이터로 서면서 이런 말을 던진다. 앞선 상대를 바라보며 그의 뒤를 쫓고, 그렇게 애쓴 결과물이라고 흔적이라고 가지고 가서는 계속 더 뒤처질 것이다. 버려라. 그러면 더 크게 얻을 것이리라. 아무도 뛰지 않는 방향으로 뛰어라. 그러면 맨 앞에 서리니.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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