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섹스와 인종의 위험한 결합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섹스와 인종의 위험한 결합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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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QUARTZ
출처 QUARTZ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여자애들이 거기 가고 싶다고 난리야.”

뉴욕 출장길에 만난 중학생 딸을 둔 교포 친구가 한숨과 짜증 섞인 소리로 말했다. 때는 2005년이었고, ‘거기’는 쇼핑가로 유명한 맨해튼 5번가(5th Avenue)에 그 해 문을 연 에버크롬비(Abercrombie & Fitch) 매장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소문을 듣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국의 30대 직장 여성들 다수가 뉴욕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라고 말해줬다. 미국에서는 이미 중학생들까지도 열광하고 있었다.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겨냥한 약간 저렴하게 나온 에버크롬비의 파생 브랜드가 있었으나, 어쨌든 그 중심은 반라의 남자들이었다.

에버크롬비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에버크롬비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출처 NPR)

원래 뉴욕 5번가에는 유명 매장이나 전시관,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들이 있어서 1999년에서 2003년까지 주재하던 시절에 출장자들의 마케팅 투어 코스로 자주 들렀고, 트렌드 파악을 위해서도 부러 자주 가던 곳이었다. 새롭게 대두되던 5번가의 56가 쪽으로 붙어 있는 에버크롬비 매장 앞에 갔다. 수도 없이 들었던 것처럼 20대 초반의 잘생긴 남자 둘이 상체에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골반 중간까지 내려오는 스키니진을 입고 현관 양쪽에 서 있었다. 입장하는 이들, 주로 여자 친구들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힐끗 본 매장 안쪽은 클럽 조명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차마 들어가지는 못했다. 분위기가 영 어색하기도 했고, 입장하려는 사람들, 대부분 여자가 너무 많았다. 그때가 에버크롬비의 전성기였다.

19세기 말의 1892년에 태어난 에버크롬비는 마케팅 전략과 과감한 실행을 통하여 브랜드 반전을 이룬 대표적 사례이다. 원래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아웃도어 의류로, 사냥으로도 명성을 날렸던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즐겨 있었다고 한다. 1900년대 전반기의 그런 역사적 인물들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은 에버크롬비는 1970년대에는 파산 신청을 하기도 했다. 이후 주인이 몇 차례 바뀌다가 1980년대 말부터 젊은이의 패션 브랜드로 방향을 바꾸며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1990년대에 마이크 제프리스(Mike Jeffries)가 CEO로 와서는 도발적인 섹시함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켰다. 에버크롬비 내부에서 이들을 ‘모델(model)’이라고 불렀다.

상체에 아무 옷가지도 걸치지 않아 빨래판 혹은 식스팩이라고 하는 복부 근육에 탄탄한 가슴을 거리낌 없이 노출한 남성들을 매장 점원으로 배치하고, 그들 중 특히 빼어나다는 이들은 대놓고 성적인 동작과 노출로 범벅이 된 광고에 출연했다.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를 다니면서 모델로 쓸 만한 이들을 선발하는 채용(recruit) 팀을 대규모로 운용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미국 밖에 살던 나도 이상하면서 불편하게 느꼈다. 광고 사진이나 영상 속의 남자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하여 기용된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 매장 소개에 나오는 종업원, 즉 그들이 모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모두 백인이었다. 이를 비판한 글이 온라인 잡지로 유명한 살롱닷컴(slaon.com)에 실렸고, 에버크롬비는 급하게 최고다양성책임자(CDO: Chief Diversity Officer)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물론 흑인(African American)이 그 책임자였고, 부서는 두 가지를 개선하고 추구한다고 했다. 다양성(diversity)과 포용(inclusion)이었다.

신속한 조처로 6년 정도 인종 관련 이슈를 잠잠하게 누르고 있던 에버크롬비에 2013년부터 곳곳에서 곪았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중국인, 한국인, 베트남인 거주자가 다수인 도시의 에버크롬비 매장에 근무하던 아시안 계통의 점원들을 해고하고 백인들로 갈아치우며 소송이 시작되었다. 동성애자 흑인 청년은 SNS를 활용해 에버크롬비의 문제점을 많은 사람에게 전파했다. 못생기고 몸매 나쁜 애들은 에버크롬비 옷을 입을 수 없다는 CEO의 외모를 소재로 한 노골적 차별 발언이 실린 동영상이 퍼졌다. 이들 문제 제기자들과 CEO를 포함한 에버크롬비 임원진과의 만남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 자리에 나온 십여 명의 에버크롬비 임원 중 한 명을 지적하며 SNS에서 맹렬한 활약을 펼쳤던 흑인 청년이 말했다.

“이렇게 많은 백인 임원 중 당신이 유일한 유색인종이군요. 이게 에버크롬비가 말하는, 그리고 당신이 추구하는 다양성입니까?”

2006년 CDO라는 직책이 만들어지고 7년이 지났지만, 에버크롬비에 백인이 아닌 임원은 오직 그 한 명이었다. ‘다양성’과 ‘포용’이라는 부서의 이름은 그저 허울이었다. 에버크롬비의 직원 중 매장에서 직접 고객을 상대하고 광고에 나오는 이들을 ‘모델’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유색인종 직원들은 주로 창고 정리, 매장 청소, 기록 관리 등의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 일을 시킨다고 했다. 그들을 부른 명칭은 영향이나 충격이란 뜻의 ‘임팩트(impact)’였다. 그들 임팩트 출신 중 다수가 소송을 시작했고, 그 회의에도 참석했다. 에버크롬비에게는 악몽과 같은 반전이었겠지만, 제대로 이름값을 했다. 다양성을 담당한 흑인 임원은 그 회의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에버크롬비를 떠났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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