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집단 히스테리아를 사주한 지식인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집단 히스테리아를 사주한 지식인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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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ANM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미국 LA에 가서 시간이 나면 꼭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일본계 미국인 역사박물관(Japanese American Museum)’이다. <Nissei>라는 일본인들의 미국 이민사를 다룬 책을 한창 읽고 있었던 때에 마침 LA에 출장을 갔고, 현장 체험 학습이라고 스스로 명명하면서 처음 찾아갔다. 책에서나 박물관에서나 당연히 세계 2차대전 때 벌어졌던 미국 내 일본인들에 대한 내륙 지방으로의 강제 이주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참고로 미국 정부는 ‘강제 이주’라는 말보다는 공식 용어로 ‘Relocation(재배치)’이라고 하는 아무런 역사적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를 관장한 정부 기관도 ‘WRA(War Relocation Authority : 전쟁 재배치국)’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나 보통은 ‘강제 축출’이라는 의미를 가진 ‘Evacuation’이라고 호칭하고 있고,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나치의 유태인, 집시 등의 강제 수용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해서 강제적인 집단 수용에 해당하는 ‘Concent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런 비상식적이고 비인도적인 일이 아무리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이라지만,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부하는 곳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제 이주와 관련해 20세기 미국 지식인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꼽힐 만한 두 사람의 언행을 보면, 집단적 히스테리아가 어느 만큼 사람들의 눈을 무의식적으로 멀게 하고, 또 확대 재생산되는가를 알 수 있다. 나중에 미국 대법관으로 인권운동의 수호신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존경받는 얼 워렌(Earl Warren), 20세기 최고 언론인으로 추앙 받는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이 그 주인공들이다. 

일본인 강제 이주 문제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워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인들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비행기 공장, 공항, 댐, 급수장, 군사기지 등 전략적 거점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진주만 습격을 보건대, 이는 군사적 목적으로 치밀한 계획하에 행해진 것이다."

19세기 말 계약 농업 노동자로 이민 오기 시작하여, 사회적 신분으로나 불평등한 법 조항에 의해서나 대부분 농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들은 도시 중심부에 살 수 없었다. 워렌이 언급했던 이른바 ‘전략적 거점’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일본인들이 모여 산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 시설물들은 당연히 도시 중심에 있을 수 없던 것들이었고, 따라서 주민들의 저항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일본인 집중 거주 지역에 건설되었다.

진주만 폭격 이후 3개월이 지났는데 아무런 사보타주나 소요 사태, 오열 활동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누군가 질문하자 그는 더 기가 막힌 발언을 한다.

"그런 활동이 없다는 자체가 더욱 불길한 것이다. 그들은 최악의 사태를 불러올 결정적인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적국의 주민이 된 미국 내 일본인들은 아무리 얌전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고, 강제 이주의 근거로 삼아지고야 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조처가 취해지기 전 한발 앞서서, 서해안에서 일본인들을 강제 이주시켜야 한다는 칼럼을 썼던 리프만은 워렌의 말을 받아서 말했다.

"그런 활동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이 얼마나 잘 조직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들은 최대의 충격을 줄 시기까지 기다리고 있다."

실로 당시 미국 거주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여론의 포위 속에서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조그마한 사보타주라도 있었으면 '그것 봐라' 했을 테고, 가만히 있어도 '때를 기다린다'라고 했을 테니 말이다.

출처 Public Intelligence

미국 정부는 5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일본인들의 강제 이주에 대하여 공식으로 사과했지만, 위의 두 사람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기껏 한 것이 리프만이 “그 당시의 상황 - 전쟁 히스테리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the state of war hysteria'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해당하는 'the temper of the times'라는 표현을 썼다 -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정도의 불가피 운운했다.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발언에 대해서 반론조차 제기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집단적 히스테리아를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었다. 그런 여론의 폭풍을 몰고 온 당사자가 당시의 분위기가 불가피했다느니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을 호도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당시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그들이 진실로 했야 했을 역할은 집단적 히스테리아에 빠진 사회를 이성(理性)의 세계로 복원시키는 중심축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집단 히스테리아를 증폭시켰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고 그 적을 공격하는 분노를 폭발시켜 민주주의의 반전, 전쟁의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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