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방아쇠 대신 술병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방아쇠 대신 술병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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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발사한 중화민국 최대의 포탄 (출처 위키피디아), 금문고량주 58
중국이 발사한 중화민국 최대의 포탄 (출처 위키피디아), 금문고량주 58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 중의 하나였던 중국에서 축배를 드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일본에 대항하여 이루어졌던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합작’이 끝나고, 국공내전이 10년 만에 재개되었다. 수치로 나타나는 병력과 갖추고 있는 무기의 양과 질에서 압도하는 국민당군의 우세는 초반 잠깐이었다. 부패와 실정으로 내부에서 붕괴하기 시작한 국민당군은 지리멸렬하고, 중국인들의 지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얻은 인민해방군으로 불린 공산군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결국 중국 동남부 샤먼(厦门)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타이완(臺灣)섬으로 국민당 정부가 쫓겨 왔다. 패퇴한 국민당군이지만 해군과 공군에서는 우세한 편이었다. 샤먼에서 3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진먼(金門)섬을 전초기지로 삼아, 섬 전체를 벙커처럼 만들었다. 17평방 킬로미터의 작은 섬에 한창 많을 때는 타이완 군대 10만 명 이상이 주둔하기도 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이 진먼섬을 점령하기 위하여,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바로 그달인 1949년 10월 말에 대규모 상륙전을 전개한 공산군은 처절한 패배를 맛보았다. 이후로는 이따금 소규모 전투만 벌어지다가 1958년에는 중국 본토에서 진먼섬으로 44일간 47만여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국민당군에서도 같은 기간 약 12만 발의 포탄으로 대응했다. 다음 해로 접어들면서 1981년까지 양측은 하루 걸러서 혹은 일주일에 한 번씩 포탄을 주고받는 기이한 전투를 벌였다. 중국과 타이완의 소위 양안 관계가 극한 대치 상태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면서 진먼섬에는 중국 관광객들도 몰려들고, 포탄 탄피나 불발 지뢰 등으로 만든 각종 기념품이 넘쳐나기 시작하며 타이완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그런 토산품 중의 하나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좋은 '금문고량주'이다. 원래는 벙커 속에서 포격을 견디어야 하는 국민당군에게 지급되는 보급품 중의 하나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비슷하게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곤 하지만, 다수의 사람에게 그 섬에서 벌어졌던 전투와 수십 년 지속된 기묘한 포격전 따위는 잊힌 지 오래다.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쓴 책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이언 윌리엄스 지음, 김정아 옮김, 반니 펴냄, 2022)에 포격전과 고량주라는 진먼섬의 상징물을 담은 글귀가 나왔다. 저자가 진먼섬에 갔다가 뤄푸(洛夫)라는 시인이 쓴 글귀라며 액자에 써진 걸 봤다고 소개했다.

“술병 따는 소리가 방아쇠 당기는 소리보다 낫다.”

원문이 궁금하여 인용구를 봤을 때, 마침 서재 옆 책상에서 한창 자신의 한시 강의안을 작성하던 처에게 구절이 나온 원시를 찾아달라고 했다. 자기 일을 할 때 뭔가 물어보면 질색하는데, 이런 한시와 관련된 질문, 그중에서도 특정한 구절의 원전 등을 찾아달라면, 처는 아주 좋아한다. 바로 도전 의식과 자신감에 차서 검색을 시작했다. 잠시 후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가까운 것을 찾았고, 책에 나온 것은 의역한 것 같다며 어느 시구절을 보여줬다.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내가 직접 약간 의역을 해봤다.

炮弹孔里 长出来的高粱,酿了酒 竟有割喉的火药味

포탄 구멍에서 나온 수수로 술을 빚어 마시니 목을 베는 듯한 화약 맛이 나네'

타이완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던 후배 하나가, 이 얘기를 듣고는 뤄푸의 원시를 찾아주었다. 시의 제목은 <再回金門>으로 <금문(진먼)에 다시 돌아와서> 정도가 되겠다. 뤄푸가 1950년대 말에 진먼섬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했는데, 50여 년 후에 복무했던 곳에 돌아와서 지은 시라고 한다.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 바로 “술병 따는 소리가 방아쇠 당기는 소리보다 더 낫다”로 원문은 이러하다.

開酒瓶的聲音, 畢竟比扣扳機的好聽

뤄푸 (출처 자유시보)
뤄푸 (출처 자유시보)

북에서는 미사일을 쏴 대고, 그에 대응하여 전략폭격기를 위협하는 극도로 위험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어울리는 시구절이 아닌가. 예전에 평화를 갈구할 때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자’고 했다. 보습과 낫이 드물어진 현대에 맞춰, 포탄 대신 술잔을 만들고, 방아쇠를 당기지 말고 술병을 따서 서로 잔을 기울이는 반전을 꿈꿔본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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