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무너지면, 업계 전체가 무너진다

기준이 무너지면, 업계 전체가 무너진다

  • 최영호 기자
  • 승인 2025.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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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 매드타임스 최영호 기자] 국내 광고업계는 지금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일부 광고회사의 수수료 할인 경쟁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업계는 더욱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한 광고회사가 ‘수수료 5%’ 조건의 AOR(Agency of Record) 계약을 주요 게임 광고주에게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수익성이 낮고 인력 의존도가 높은 게임 광고 시장에서 이러한 조건은 사실상 자해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이 경쟁이 단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퍼포먼스 기반의 중소 광고회사에서 시작된 수수료 인하 흐름은 이제 업계 상위권 회사까지 확산되고 있다. 상위권 업체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 중소 광고사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구조는 결국 초저가 경쟁의 고리를 굳히고,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치킨게임’으로 귀결된다.

이 위기는 게임 광고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수료를 실적 확보 수단으로 삼는 방식을 장기적으로 업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택이라고 지적한다. 덤핑 수수료, 광고주와의 비정상적인 계약 관행, 과도한 경쟁은 이미 광고 산업의 경영 환경을 심각하게 악화시켜 왔다.

국내 광고업계 전반은 오랫동안 매출 외형과 총 취급액 중심의 구조에 매몰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수주 규모가 곧 성과의 기준이 되었고, 이익률 개선이나 전략 기획, 창의력 강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여기에 광고 대금 지급 지연, 무보상 PT, 제작비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 제공, 인력 소모까지 복합적인 문제가 겹치며 구조적 한계가 분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업계에서는 ‘매체 수수료 기준선’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소한의 수익을 담보하는 하한선을 정해 모두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일부 대형 회사는 이를 ‘담합’으로 규정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담합’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담합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가격 왜곡 행위를 의미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기준선은 불공정한 경쟁을 막고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한 중소 광고회사 대표는 “우리가 말하는 것은 부당한 이익을 위한 담합이 아니라, 모두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초저가로 시장을 잠식하려는 전략이 비윤리적”이라고도 강조했다.

지금 업계가 직면한 상황은 단순한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산업 구조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 광고회사들은 초저가 경쟁에서 벗어나 프로젝트별 수익성과 마진을 철저히 분석하고,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경쟁 PT에 참여한 모든 회사에 최소한의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고, 무한 경쟁이 아닌 협력 기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금은 ‘누가 더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준이 무너지면 업계 전체가 무너진다. 광고업계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공정한 경쟁 질서,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창의성과 전략이 중심이 되는 구조 전환이 절실하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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