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 2025,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서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D&AD 2025,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서 ‘사라질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 허익서
  • 승인 2025.06.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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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플랜 코리아 제공
서비스플랜 코리아 제공

5월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의 첫 발걸음은 단순한 출장의 시작이 아니라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흐름을 읽기 위한 여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올해 D&AD는 심사위원이나 수상자가 아닌 ‘참관인’의 입장에서 마주한 첫 경험이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비스플랜 코리아는 올해 수상작이 없는 상황에서도 D&AD 현장에 저를 파견했습니다. 단순한 관람 이상의 목적, 즉 세계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최전선을 눈으로 확인하고 한국 광고산업에 적용할 통찰을 얻어오는 일이 이번 출장의 본질이었습니다. 

출처 D&AD 링크드인 계정
출처 D&AD 링크드인 계정

AI와 CRAFT, 그 사이에서 생존을 고민하다

D&AD 2025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AI’ 였습니다. 연사와 세션 대부분이 AI 시대의 크리에이티브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해답은 단순한 기술의 습득이 아닌, 인간 고유의 CRAFT와 감성, 그리고 직관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세션 중 하나는 Leland Maschmeyer의 「Perform or Perish」였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점진적으로 예상이 가능한 상태로 다가오기 보단 갑작스럽고 파괴적으로 다가온다는 메시지는, 지금 광고 산업이 마주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이는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이뤄진 행위로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의 전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AI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새로운 시대에 맞춰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라질 것이다”라는 명제는 이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Leland Maschmeyer (D&AD 유튜브 캡처)
Leland Maschmeyer (D&AD 유튜브 캡처)

광고주의 용기, 크리에이티브의 한계를 넘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Martin Rose와 Kate Tipper가 소개한 「How to Start a Cult of Fried Chicken」 세션은, 크리에이티브의 광고주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본질이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습니다. ‘Believe in Chicken’ 캠페인의 성공은 단순히 과감한 아이디어 때문이 아닌, 광고주의 절박함과 열린 태도가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많은 크리에이터가 ‘이건 광고주가 안 좋아할 것 같아’라는 이유로 아이디어를 스스로 검열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그 용감한 아이디어들이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대행사 회의 테이블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케이스는 오히려 광고주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전략적으로 그 니즈에 맞춰 극단적이고 실험적인 크리에이티브를 현실화한 대담함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엑셀로 만든 뮤직비디오, FCB New York의 ‘Spreadbeats’가 보여준 집념의 미학

‘CRAFT’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만든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FCB New York이 제작한 스포티파이 캠페인 ‘Spreadbeats’는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장인 정신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픽셀 아트, 그림판 애니메이션 등 디지털 크리에이티브의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하지만, 엑셀 시트 위에서 완성된 뮤직비디오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한다고?’라는 반응을 자아낼 정도로 과감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바이럴 콘텐츠를 넘어, 미디어 플래너들을 겨냥한 정밀한 전략 캠페인이기도 했습니다(미디어 플래너들에게 보낸 INVOICE를 엑셀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다니!).

이와 같은 혁신성과 장인정신은 곧바로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FCB New York은 블랙 펜슬을 포함해 총 18개의 펜슬을 수상하며, Advertising Agency of the Year와 Agency Network of the Year까지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창의성과 집념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D&AD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TBWA Helsinki, AI로 활용해 생태계 보존 문제 해결…화이트 펜슬 수상

TBWA Helsinki가 핀란드의 에너지 기업 Fortum과 협력해 선보인 ‘Fortum + FishHeart’ 프로젝트가 환경과 기술의 균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고 싶습니다. 이 캠페인은 인간의 개발로 인해 수백 년간 이어진 생태계 단절 문제, 특히 댐으로 인해 송어와 민물고기들이 상류로 이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댐 하류에 지하 수로를 만들어 물고기들의 안전하게 댐 상류로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이 수로에 AI 기술을 접목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모든 물고기를 상류로 이동시킬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 AI가 어종을 식별하고 상류로 이동이 필요한 어종만 골라 수로를 열어주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 자체의 쇼케이스보다는, 기술을 통해 환경 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며 인공지능을 주연으로 내세우기 보다, 의미 있는 조연으로 활용된 이 방식은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D&AD가 말하는AI와 크리에이티브의 현주소. 인간이 주연, AI는 의미 있는 조연

이번 D&AD에서는 인간이 오로지 인간의 창의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감각과 감정을 어디까지 풀어낼 수 있는지를 하나의 사진 한장부터 인쇄 디자인, 뮤직비디오와 통합 브랜딩 캠페인까지,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매체에 걸쳐 표현한 하나의 집대성과 같았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때로는 경탄하고, 때로는 부러워하면서 전세계에서 모인 크리에이티브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Spreadbeats’ 부터 고양이들의 츄르 빨리 먹기를 스포츠화 시킨 ‘The Gravy Race’와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물가안정을 약속하는 ‘Price Packs’까지. 인간의 창의성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AI를 위한 자리는 아직까지는 한정적인 역할로 국한시키고 있었습니다. 앞서 설명해드린 ‘Fortum + FishHeart’의 경우는 AI가 인간이 일일이 하기 힘든 작업을 AI로 자동화 시켰으며 LG 휘센의 ‘Menopause Mode’는 폐경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급격한 체온 상승을 AI로 감지해 에어컨 온도를 자동으로 감지 및 조절한다. 이런 기류를 봤을 때 이번 D&AD에서 정의한 AI의 역할은 인간의 주연과 조연의 관계와 같으며 정확하게 역할을 나눴다고 봅니다. 인간은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감각과 감정을 극한으로 올리고, AI는 그 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조용히 보조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AI를 대하는 유럽과 한국의 온도차

Javier Campopiano의 「I’M NOT A ROBOT」은 기술이 몰고 오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의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단단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세미나를 듣고 한국시장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점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유럽 광고업계에 반해, 한국은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DNA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AI를 먼저 만든 건 아니지만, 그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우리식으로 소화할 줄 아는 민족입니다.

D&AD는 누구를 위한가?

이번 D&AD를 참관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은 부분은 행사의 타깃이 업계 초년생, 혹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많은 세션이 실무보다는 기본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연사들의 채용 홍보나 자기 PR 성격도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중견 이상급 크리에이티브 리더에게 필요한 행사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익숙한 방식, 익숙한 매체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꺼리게 됩니다. 그러나 변화는 우리의 불편함을 자극하면서 사고를 재정렬하게 만듭니다. ‘내가 익숙하다고 느끼는 크리에이티브는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자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마무리하며

D&AD는 단순한 광고 시상식이 아닙니다.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지금 이 시대의 크리에이티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몸소 느끼고 토론하는 장입니다.

이번 참관을 통해 느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변화에 반응하지 않는 자는 사라진다”는 절박한 현실이었습니다.

다음 D&AD에서는 참관인이 아닌, 수상자로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젊은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더 도전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허익서 서비스플랜 코리아 Executive Crea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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