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브랜드는 더 이상 ‘정체성’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브랜드는 시스템이고, 감각이며, 살아 숨 쉬는 존재다. 웨인 디킨(Wayne Deakin)은 바로 그런 브랜드의 진화를 설계해온 인물이다. 그는 광고, 디지털, 경험 디자인까지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왔으며, 현재는 울프 올린스(Wolff Olins)의 글로벌 ECD이자 Global Principal로서 전 세계 브랜드를 이끌고 있다.
송창렬 크랙더넛츠 대표는 2025년 D&AD 현장에서 웨인 디킨을 직접 만나 나눈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단순한 문답을 넘어, 창의성과 기술, 전략과 감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브랜드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시대, 브랜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질문에 웨인 디킨은 명쾌하면서도 도발적인 시선으로 답을 던진다.

“브랜드는 더 이상 정지된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체다.”
송창렬: 광고, 디지털, 경험 중심 브랜딩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일해 오셨습니다. 당신의 창의 철학은 어떻게 진화해 왔고, 지금은 어떻게 적용되고 있나요?
웨인 디킨: 창의란 결국 ‘점과 점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과거엔 그 점들이 필름이나 인쇄물에 있었다면, 지금은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브랜드 시스템 안에 숨어 있죠. 지금 브랜딩은 고정된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매일,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하죠.
저는 프로 서퍼 출신입니다. 파도를 억지로 이기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되, 거기에 나만의 방식과 감각을 더하는 법을 배웠어요.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매일 증명해야 하죠. 브랜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소속감을 주며, 행동을 이끌어야 합니다.
“차별화는 출발선일 뿐이다. 의미와 맥락이 브랜드의 진짜 좌표다.”
송창렬: 2025년에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차별화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요?
웨인 디킨: 차별화는 이제 출발선에 불과합니다. 지금 중요한 건 ‘의미의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더하고 있는가, 그들이 살아가는 문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가 핵심이죠.
TV 가 방송 중심에서 온디맨드 개인화로 옮겨간 것처럼, 브랜드도 이제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맥락에 반응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어요. 일관성은 신뢰를 만들고, 적절함은 생존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브랜드가 진짜 흔적을 남기려면 ‘문화적 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급진성과 실용성은 공존할 수 있다. 핵심은 ‘전략적 상상력’이다.”
송창렬: 급진적 창의성과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는 어떻게 함께 가는 걸까요?
웨인 디킨: 둘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넷플릭스, 우버, 에어비앤비 모두 처음엔 급진적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수익과 주가로 모든 걸 입증했죠. 핵심은 ‘스마트한 과감함’입니다. 단순히 튀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목적과 진짜 사람들에게 닿는 방식으로 과감해져야 해요.
전략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기회를 발견하고, 브랜드가 예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 그게 진짜 혁신이고, 변화입니다.
“경험은 말보다 먼저 신뢰를 만든다. 브랜드는 느껴져야 한다.”
송창렬: 오늘날 강력한 브랜드 경험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웨인 디킨: 브랜드 경험이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입니다. 말투, 서비스 흐름, 인터페이스, 공간의 냄새나 소리까지. 이 모든 마이크로 터치포인트가 신뢰를 만들거나 무너뜨립니다.
좋은 경험은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며, 브랜드 고유의 감각을 전달합니다. 브랜드는 일관된 방식으로 매 순간을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 합니다.

“글로벌은 전략이고, 로컬은 감정이다. 성공은 둘의 공명에서 비롯된다.”
송창렬: 한국처럼 문화적으로 섬세한 시장에 접근할 때, 글로벌 브랜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웨인 디킨: 정답은 하나예요. 겸손함.
한국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매우 특별한 시장입니다. 유교적 가치와 공동체 중심의 감성, 거기에 독창적인 재해석과 실행력이 결합되어 있어요. 외부에서 ‘전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스며드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사고 + 로컬 감각’이 진정한 성공의 열쇠죠.
“AI 는 조수이자 자극제다. 창의의 속도와 방향을 함께 바꾼다.”
송창렬: AI 는 지금 창의적 팀의 일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웨인 디킨: 저는 AI 를 ‘조수’이자 ‘실험실’로 봅니다. 리서치, 인사이트, 아이디어 탐색 등 수많은 과정에서 효율을 높여주지만, 진짜 매력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식’을 보여주는 데 있어요.
지금은 기획자가 프로토타이핑을 하고, 디자이너가 시스템을 설계하며, 전략가가 기술을 이해하는 시대입니다. AI 는 대체가 아니라 확장입니다. 우리를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주는 자극제이기도 하죠.

“속도보다 중요한 건 관점이다. 창의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송창렬: AI 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일까요? 아니면 창의 자체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고 보시나요?
웨인 디킨: AI 는 단지 빠르게 해주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고정된 패턴을 깨고, 전혀 다른 시각을 던져주죠.
하지만 중요한 건, 창의는 결국 ‘의도’라는 점입니다. 왜 이게 중요하고, 어떻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진짜 창의는 여전히 인간의 감각에서 비롯된다.”
송창렬: 요즘 AI 때문에 불안해하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웨인 디킨: 당신의 가치는 도구가 아니라, 당신의 시선과 감각에 있습니다. 연필에서 포토샵, 플랫폼에서 AI 로, 창의는 늘 진화해왔어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죠. 취향, 공감력, 그리고 세상을 비스듬히 보는 감각. 그건 AI 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최고의 작업은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질문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송창렬: 마지막으로, 이제 막 창의 산업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웨인 디킨: 조용히 있지 마세요. 탐험하고, 질문하고, 허락받지 말고 움직이세요. 최고의 작업은 보통 ‘불편함’에서 시작됩니다. 안전한 건 쉽게 잊혀지죠.
그리고 잊지 마세요. 당신만의 관점이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웨인 디킨과의 대화는 마치 브랜드 전략가와 창의 리더가 함께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를 설계해나가는 과정 같았다. 그는 창의성을 단순한 표현이 아닌, 비즈니스와 문화를 움직이는 시스 템으로 바라본다. 글로벌한 시야와 로컬에 대한 깊은 존중, 기술에 대한 통찰과 인간다움에 대한 집 착이 공존하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가리킨다.
그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당신만의 관점입니다.”
AI가 가속하는 시대,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브랜드가 진짜 살아 숨 쉬 는 존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의 진심과 시선이다.
결국 브랜드는 관점이다. 관점이 존재의 이유를 만들고, 연결을 이끌며,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브 랜드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웨인 디킨의 철학은 그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