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AD 어워드 엔터테인먼트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민트 노파랏 엑수완차로엔(Mint Nopparath Eksuwancharoen, ECD & Head of Art, SOUR Bangkok)을 런던에서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D&AD 페스티벌 중, 서비스플랜 코리아 박지혜 차장이 직접 진행한 특별 인터뷰로,민트가 걸어온 창작 여정과 아시아 크리에이티브 신(Scene)에서의 리더십, 감정을 중심에 둔 스토리텔링 철학까지 폭넓게 담아냈다. 광고, 시리즈, 버추얼 캐릭터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해온 그녀의 작업 속에서, ‘창작자는 무엇에 이끌리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함께 나눴다.

이번 D&AD의 테마인 “Drawn to Create”는 창작자들이 타고난 본능처럼 느끼는 창작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민트님께서 가장 강하게 창작 본능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에게 창작의 충동은 대개 ‘불편함’에서 시작돼요. 어떤 것이 부당하거나 미완성처럼 느껴지거나, 뭔가 어긋나 있을 때 생기는 내면의 마찰이죠. 어떤 브랜드가 지나치게 조용하게 느껴지면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어지고,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보면 균형을 맞추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바로 그 ‘불균형을 바로잡고 싶은 본능’이 저를 이끌어요. 창작은 언제나 편안함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D&AD 2025 심사 기간 중, 인상 깊었던 작품이나 개인적인 창작관에 영감을 준 작업이 있었나요?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는 ‘Clash of Clans’나 ‘Ultra Beer’ 같은 브랜드가 특히 인상 깊었어요. 이 브랜드들은 원래도 강한 크리에이티브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매년 그 핵심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더 대담하고 날카로운 아이디어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어요.
그 작업들을 보며 저 자신이 오랫동안 이끌어온 캠페인들을 되돌아보게 됐죠. 스스로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경계를 넓혀갈 수 있을까? 그 브랜드들이 보여준 건, 일관성이 반드시 ‘안전하게 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기반 위에 설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죠.

광고, 디자인, 디지털 콘텐츠, 엔터테인먼트를 넘나드는 폭넓은 여정을 이끌어 온 내면의 동기나 열정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창작 여정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지켜온 핵심 가치나 신념이 있다면요?
저는 창의성은 늙는 것이 아니라 진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업계는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죠. 사용하는 도구부터 플랫폼, 콘텐츠 소비 방식까지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늘 스스로에게 호기심을 강요하고, 계속 배우려 노력합니다.
저에게 새로운 분야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하나의 렌즈입니다. 그 렌즈는 더 나은 창의성뿐만 아니라 더 깊은 문화적 통찰을 가능하게 하죠. 유행을 쫓기보다는 시대와 제대로 호흡하고자 하는 갈증, 그 감각이 저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Fred & Farid, Anomaly 등 중국 상하이에서의 경험은 태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해 민트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상하이에서는 ‘빠르게 움직이고, 크게 생각하고, 소음을 뚫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시장은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죠. 타깃 대상이 수백만이 아니라 수십억 단위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는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해야 했어요.
반면, 태국은 저에게 ‘감정의 깊이’와 ‘문화적 섬세함’을 다시 일깨워준 곳입니다. 이 두 환경은 저에게 균형을 선물했어요. 대담함과 공감의 조화, 날카로움과 우아함의 균형, 바로 이것이 제가 추구하는 창작의 핵심 가치입니다.

민트님께서는 여성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한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민트님의 창작 시각이나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여성은 디테일을 잘 포착하지만, 그렇다고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로 표현되지 않는 통찰, 다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미묘한 것들을 읽어내는 데 강점을 갖고 있어요. 그런 감각은 스토리텔링, 디자인, 팀 운영 등 모든 과정에 자연스럽게 반영됩니다. 저에게 그것은 일종의 슈퍼파워입니다. 작업에 더 많은 층위를 더하고, 창작의 프로세스를 더 깊이 있게 만드는 힘이죠.
Palette of Thailand, SangSom Thai Rum 같은 캠페인은 태국의 문화 정체성을 신선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합니다. 민트님께서는 로컬 인사이트를 어떻게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구현하나요?
저는 문화를 '빌려온다'는 개념을 믿지 않습니다. 문화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태국에서는 문화가 공기처럼 숨 쉬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원 축제에서,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죠. 모두가 일종의 엔터테이너처럼 살아가고 있고, 전 세계가 이런 태국의 에너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역의 이야기를 전 세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정성 있는 브랜딩이라고 느껴집니다.
전통, 감정, 색채와 같은 추상적인 문화 개념을 브랜드 경험이나 콘텐츠로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창작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을 전달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죠. 저는 단순히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연출하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원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지면, 디자인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됩니다.톤과 색감, 속도까지 모든 요소가 감정을 위한 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모든 창작 요소는 감정을 먼저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Girl From Nowhere>는 기존 광고를 넘어서는 강렬한 시도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기획 배경과 사회적 메시지를 ‘서사’로 전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은 콘텐츠가 여성을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저희는 그 틀을 깨고 싶었습니다. 동정을 유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에게 진짜 힘을 부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Girl From Nowhere>는 그런 불편함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도발적이고, 사과하지 않는 시선. 여성의 관점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직접 ‘실행하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런 변화가 지금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Girl From Nowhere>를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제작하면서 겪었던 도전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요?
단편 광고에서 장편 서사로 넘어가는 것은 분명 큰 도전이었지만, 저희는 오히려 그 안에서 기존의 강점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광고는 짧은 시간 안에 시선을 끌고, 그 관심을 유지하는 데 능숙하잖아요. 그 긴장감과 정밀함을 시리즈에도 그대로 녹여냈습니다.
형식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Girl From Nowhere>는 앤솔로지(anthology)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에피소드마다 실제 뉴스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강력한 개념과 잊히지 않는 캐릭터로 연결되었죠. 사실, 캠페인을 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강력한 광고 아이디어처럼 ‘나노(Nanno)’라는 캐릭터는 시리즈 전체의 핵심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와 채널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확장 가능한 하나의 큰 아이디어, 바로 그것이 <Girl From Nowhere>의 구조적 기반이었습니다.
광고 에이전시가 <Girl From Nowhere>처럼 경계를 넘는 엔터테인먼트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D&AD 심사를 통해 현재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서 어떤 트렌드를 관찰하셨나요?
광고 에이전시는 ‘주목을 끄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조직입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DNA에 새겨진 능력이죠. 지금은 모두가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이고, 사람들의 주의력은 점점 더 분산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멀티채널, 멀티포맷,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리 중심적 접근을 해야 합니다. 요즘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단순히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세계관과 서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광고 에이전시가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을 이어갈 수 있는 매우 전략적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며, 앞으로 더욱 확장해 나가야 할 영역이기도 하죠.

민트님께서는 태국 최초의 버추얼 인플루언서 Katie를 만들었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향후 디지털 마케팅, 게임, 엔터테인먼트 생태계 안에서 Katie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당시만 해도 버추얼 인플루언서는 이제 막 부상하던 신흥 트렌드였고, 태국에는 아직 사례가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태국 최대의 아웃도어 미디어 기업인 Plan B가 저희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그 안에서 엄청난 가능성을 보았죠. 전국에 걸쳐 설치된 디지털 광고판은 Katie라는 버추얼 캐릭터를 선보이기에 완벽한 무대였고, 우리는 그것을 현대적이고 디지털 네이티브한 태국의 얼굴로 구현해보고자 했습니다.
Katie는 단순한 기믹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정체성과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하나의 선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AI가 콘텐츠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Katie는 그 변화의 경계를 시험하는 실험이자 출발점이었습니다.
향후 Katie는 디지털 마케팅뿐 아니라 게임, 패션, 엔터테인먼트 전반으로 확장되며 더 깊은 문화적 연결과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창작 여정에서 어떤 계획이나 목표가 있나요?
요즘은 좀 더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을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가 아니라, ‘창업가’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어요. 브랜드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도전이고, 그런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물론 여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기회들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을 탐험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는 한국의 창작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신다면요?
우리는 지금, 도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구에는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창작자는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라, 의미를 설계하는 사람이죠. 세상이 제약을 줄지라도, 오히려 그 제약 속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도구에 끌려가지 말고, 당신의 창의성으로 도구를 이끌어가세요.

민트 노파랏 엑수완차로엔(Mint Nopparath Eksuwancharoen)은 태국 방콕과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해 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아트 디렉터다. 현재는 태국의 독립 광고 에이전시 SOUR Bangkok에서 ECD(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및 아트 총괄을 맡고 있으며, 여성 중심 브랜드를 기반으로 광고, 디자인,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칸 라이언즈를 비롯해 ADFEST, Adman Awards, The One Show 등 다양한 국내외 광고제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21년에는 Next Creative Leaders 아시아퍼시픽 수상자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디지털 시대의 브랜드 경험을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창작자와 소비자 간의 새로운 감정적 연결을 탐구하고 있다.
박지혜 서비스플랜 코리아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