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from Tokyo] 벤토에도 스토리가 있다

[Trend from Tokyo] 벤토에도 스토리가 있다

  • 양경렬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1.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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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양경렬 칼럼니스트] Bento a Japanese-style packed lunch (= a light meal that you take to eat at work or school), usually in a special box with separate parts or containers inside it. (출처 Cambridge Dictionary)

일본 말로 벤토(弁当)는 우리나라 말로 도시락이다. 하지만 벤토에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가 베어져 있어서 이 칼럼에서는 벤토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케임브리지 영어사전(Cambridge English Dictionary)에도 벤토 (Bento)가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일본의 벤토 문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약 12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귀족이 벚꽃놀이나 단풍놀이를 갈 때 밖에서 식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提重(사게쥬)’가 벤토의 원형이라고 한다. 사게쥬라고 하면 아래 사진처럼 4~5명 정도가 즐길 수 있는 술과 안주가 들어있는 쉽게 운반이 가능한 상자를 말한다.

벤토의 원형 사케쥬

 

캐릭터 벤토, 아트 벤토

일본 전통 예능인 가부키(歌舞伎)나 노우(能)를 관람할 때에도 쉬는 시간에 벤토가 제공되어 관객들이 가부키 관람과 더불어 도시락을 먹는 것이 하나의 즐거운 이벤트이다. 가부키 공연은 4시간 정도로 진행되는데, 중간에 15~3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이 여러 차례 준비되어 있다. 이때 도시락이 제공된다. ‘마쿠노 우치 벤토 (幕の内弁当)’는 이러한 연극의 막 사이에 먹는 벤토에서 유래하였고 지금은 편의점, 기차역, 식료품점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벤토의 대명사이다. 최근에는 지금까지의 벤토의 개념을 훨씬 넘어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들어간 ‘캐릭터 벤토 (キャラ弁)’나 ‘아트 벤토’ 등이 증가추세로 새로운 벤토 문화로 등장하였다.

마쿠노 우치 벤토 幕の内弁当
마쿠노 우치 벤토 幕の内弁当
캘릭터 벤토, 아트 벤토
캐릭터 벤토, 아트 벤토

일본의 벤토를 어떤 사람은 하나의 공예품이라고 한다. 일본 요리는 눈으로 먹는다는 말까지 있는데 벤토를 여는 순간 눈과 맛이 최고의 상태에서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는 것 같다. 벤토의 내용물을 배치하는 데 신경을 쓰는 이유는 봤을 때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식자재의 맛이 섞이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비빔밥이 모든 식자재를 섞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과는 다르다. 각 식자재의 맞는 요리 방법, 맛이 다른 요리가 들어가 있어서 맛이 섞이게 되는 포장을 하게 되면 본래의 맛을 맛볼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벤토에는 일본 요리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벤토의 진수, 에키벤 스토리

벤토의 진수는 에키벤이라고 할 수 있다. 에키벤(일본어: 駅弁)이란 일본의 철도역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말한다. 역을 의미하는 ‘에키’와 벤토의 첫 음절인 ‘벤’을 합성한 신조어이다. 일본은 철도를 중심으로 사회가 발전하였고 사람이건 물류이건 모든 것이 철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각 지역의 중심이 되는 철도역을 주변으로 상권을 형성하면서 도시가 확대되어 왔다. 일본의 많은 역들이 그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해서 에키벤을 판매한다. 철도로 일본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만들어진 다양한 에키벤을 맛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에키벤은 여행에 따라다니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했고 전철 안에서 먹는 에키벤은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여행에 새로운 맛을 추가해 주는 양념과도 같은 역할을 하면서 여행에 대한 추억을 오래 남게 해 줄 것이다. 몇몇 로컬 푸드로 만들어진 에키벤은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떨치면서 철도 이용객 외에 타지역에서 인터넷 등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래전부터 벤토는 여행의 친구이자 꼭 필요한 동반자이다. 아직 외식 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여행을 떠나면 제대로 먹을 만한 곳이 없어서 더욱 에키벤의 필요성이 더 절감했을 것이다. 일본 명치시대 이후 철도가 대중교통수단으로 정착하면서 에키벤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60년대 고도성장기의 여행 붐과 더불어 더욱 진화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제는 여행과는 땔 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동경,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는 고급 백화점에서 에키벤 대회를 개회하기 시작하였고 도쿄의 한 백화점에서는 현재까지 56년째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1월에 개최되는 이 이벤트는 2주에 걸쳐 진행되는데 전국에서 출품되는 에키벤의 종류가 무려 300종류 이상이 된다고 한다.

 

코로나와 에키벤의 진화

코로나로 인해 외출, 여행, 출장을 자제하게 되면서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급감하였다. 에키벤도 큰 타격을 받아 매출이 90% 이상 감소된 업체가 속출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주택가 주변의 슈퍼에서 판매하거나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방식이 등장하였다. 에키벤이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판로의 개척을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기차에서 즐기는 에키벤이 일상생활 주변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이러한 조짐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된 것이다. 에키벤이 하나의 상품 카테고리로 정착하면서 더 이상 기차역에서만 판매하는 시대는 지났다. 백화점의 에키벤 대회가 큰 인기를 끌고 대중매체와 SNS를 통한 에키벤의 홍보 활동으로 지방의 대표 브랜드로 부각되는 등 에키벤의 수요가 생활 속의 다양한 상황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행과 연상이 되는 아이템으로 정착되면서 기차역 이외에 고속도로 휴게소나 토산품 판매점에서 팔리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상황에서 여행의 기분을 맛볼 수 있는 일반적인 상품으로 점점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 교토를 방문했다. 안 가본 지가 10년도 더 되었다. 역 구내 신칸센 승강장 가까운 곳에 눈에 띄는 가게가 있었다. ‘에키벤 여행 벤토’ 판매점이다. 도시락 가게이기보다는 기념품 가게처럼 비쳤다. 국내 여행에 대한 수요가 꿈틀거리면서 에키벤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여행은 역시 먹거리가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처럼 뭔가 허전하다. 에키벤은 지방의 특산물, 특성을 살린 브랜드로 거듭나면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술 혁신을 수용하면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최근의 에키벤의 변화를 생각하면서 향후 어떤 모습으로 진화를 거듭할지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대와 더불어 에키벤도 진화되고 있다. 아니 벤토 문화 자체가 변하고 있다.

교토역 에키벤 매장과 다양한 에키벤
교토역 에키벤 매장과 다양한 에키벤

 


양경렬 박사 ADK Korea 대표를 지냈고, 현재는 ADK 본사에서 글로벌 인사 업무를 담당. NUCB (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의 객원 교수로 활동하며 Global BBA, Global MBA에서 마케팅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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